[기후위기현장을 가다] 6천m 만년설 녹아내려 바위산 덩그러니

입력 2022-08-29 08:02   수정 2022-08-29 10:14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6천m 만년설 녹아내려 바위산 덩그러니
중국 쓰촨성 쓰구냥산 4개 봉 만년설 최고봉 정상만 남아
"몇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해…만년설, 전설 될까 걱정"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쓰촨성=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고깔모자를 쓴 것처럼 야오메이봉(해발 6천250m) 정상 부근에 겨우 눈과 빙하가 남아 있었다.
26일 중국 쓰촨성 아바짱족(티베트족)창족자치주 샤오진현에 있는 쓰구냥(四姑娘·네 처녀)산으로 올라가는 마을 입구에서 올려다본 쓰구냥산은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한여름에도 산자락까지 쌓여 있었다는 쓰구냥산 만년설은 4개 봉(峰) 가운데 가장 높은 야오메이봉 정상에만 일부 남았다. 나머지 3개 봉의 눈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튿날 아침 서둘러 쓰구냥산의 만년설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해발 3천500m 지점의 창핑거우(長坪溝) 전망대에 올랐다.
가까이서 본 야오메이봉 산허리도 바위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채였다. 오랜 기간 눈에 쌓여 초목이 자랄 수 없었던 탓에 암석 덩어리만 남은 앙상한 형상은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상은 짙은 구름에 휘감겨 보이지 않았다.
창핑거우의 울창한 수목과 시원한 계곡물을 전경으로 삼아 온통 눈으로 뒤덮인 채 우뚝 솟아 여름과 겨울 풍광을 동시에 연출했다던 쓰구냥산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 마을 주민은 "몇 년 전만 해도 만년설이 녹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러다간 여름 눈은 구경할 수 없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고 했다.


사시사철 녹지 않던 만년설의 융화(融化)는 몇 년 전부터 감지됐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토산품을 파는 40대 여성은 "제1봉과 제2봉 눈이 2년 전 여름 모두 녹더니 작년에는 제3봉 정상의 눈도 녹아 사라졌다"며 "가장 높은 제4봉인 야오메이봉은 산 밑까지 눈이 쌓여 있었는데 올해는 산허리도 녹고, 정상에만 조금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쓰구냥산도 겨울에 내린 눈이 쌓였다가 여름에 녹는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이 변해버렸다. 만년설이 전설로만 남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쓰구냥산 4개 봉 모두 높이가 5천300m를 넘는다. 최고봉 야오메이봉은 정상이 해발 6천250m이고, 산허리도 5천500m에 달한다.


한 산림 감시원은 "야오메이봉 정상의 만년설도 얼마 못 가 다 녹는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럴 일은 절대 없다. 그 지경이 된다면 청두는 물론 중국 전체가 불덩이가 될 텐데 그럴 일이 있겠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산 정상에만 옹색하게 남은 만년설이 언제까지 버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을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쓰촨성이 3개월간 지속된 폭염과 가뭄에 비상 동원한 대응을 보면 "해발 6천m 이상의 만년설은 쉽게 녹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전문가들의 기대와 달리 쓰구냥산 만년설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쓰촨성은 풍부한 용수 덕분에 전체 발전량의 80%를 수력발전으로 충당하고, 남은 전력을 다른 지역에까지 내보낸다. 이런 쓰촨성이 이번 폭염과 가뭄에 강 수위가 낮아져 수력발전이 차질을 빚자 석탄화력발전을 크게 늘렸다.
비단 쓰촨성뿐만 아니다. 지난해 가을 중국 중앙정부가 각 지방 정부에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에너지 소비 통제를 지시했다가 심각한 전력난에 부닥쳐 산업 시설 가동 중단 등 경제 성장에 타격을 받자 결국 화력발전을 늘려 전력난을 해소한 바 있다.


쓰구냥산의 사라진 만년설은 도시 문명과 거리를 두고 살던 주민들에게 기후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닌 눈앞에 닥친 현실임을 실감하게 했다.
쓰구냥산 풍경구 어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주인은 "한여름에도 냉장고가 필요 없었는데 올해는 폭염 때문에 음식이 상할까 봐 걱정돼 냉장고를 장만했고, 고기는 냉동실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한여름에도 10도대에 머물던 낮 기온이 작년에 20도를 넘더니 올해는 28∼30도인 날이 다반사라고 했다.
그의 부인은 "태어나서 외지에 나가기 전에는 반팔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 처음 온 식구 반팔 옷가지를 장만했다"고 거들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 지역 숙박시설들은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았는데 올해는 관광객들이 에어컨부터 찾는다고 한다.
한 60대 농민은 "주산물인 감자며 완두콩, 옥수수할 것 없이 모두 가뭄에 수확량이 줄었다"며 "송이를 비롯해 산에서 나는 산채도 비가 안 와 구경하기 힘들다.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중국 국가기상대는 28일에도 중·남부 19개 성·시에 고온 황색경보를 발령했다. 39일 연속 내려진, 기상 관측 이래 최장의 고온 경보 기록이 또 경신됐다.
쓰구냥산이 속한 쓰촨성 일부 지역은 이날도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웃돌 것으로 예보됐다.
p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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