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버려지는 식품 찌꺼기 다시 거둔다

입력 2022-09-15 07:01   수정 2022-09-15 11:45

[스타트업 발언대] 버려지는 식품 찌꺼기 다시 거둔다
국내 첫 푸드 업사이클 전문기업 ㈜리하베스트 민명준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식품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부산물)는 저부가가치 제품으로 활용되는 게 일반적이다. 재활용하더라도 가치가 떨어지는 퇴비나 사료 원료로 사용하는 정도다.
그러나 가치를 높여 재활용하는 업사이클(upcycle) 기술에 힘입어 사실상 쓰레기 취급을 받던 부산물이 밀가루를 대체하는 식품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식량자원을 늘리면서 환경 파괴의 주범인 탄소배출을 줄이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설립된 리하베스트(Re:harvest)는 각종 식품 부산물로 대체 원료를 만드는 국내 첫 푸드 업사이클 전문 스타트업이다
맥주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보리 등의 찌꺼기인 맥주박을 비롯한 온갖 곡물 부산물을 업사이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경기도 업사이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미국업사이클식품협회(UFA)로부터 아시아 '1호' 멤버 인증을 얻는 등 한국 시장에서 태동 단계인 푸드 업사이클 분야에서 공고한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회사 이름 '리하베스트'는 축자적으로 해석하면 재수확한다는 뜻이다.
업사이클을 통해 식품 부산물을 다시 거두어 자원·환경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삼겠다는 민명준(36) 대표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소재 사무실에서 민 대표를 만나 푸드 업사이클과 창업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 버려질 식품 부산물 가치 높이는 '푸드 업사이클'
민 대표는 아직은 일반인에게 낯선 푸드 업사이클 개념을 설명하면서 폐타이어를 예로 들었다.
자원순환 관점에서 폐타이어를 그대로 화단 조경 자재로 사용하면 가치가 유지되는 리(Re)사이클, 잘게 분쇄해 아스팔트 보조재로 쓰면 가치가 떨어지는 다운(Down)사이클, 원료를 뽑아내 신소재를 만들어 내면 가치가 올라가는 업(Up)사이클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식품에 적용한 것이 푸드 업사이클이다.
민 대표는 쓸모없는 식품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식량자원으로 바꾸는 기술이라고 푸드 업사이클을 정의했다.



경기도 이천에 파일럿 공장을 둔 리하베스트가 초기 단계에서 업사이클 대상으로 관심을 쏟은 것은 맥주박과 식혜 부산물이다.
그 이유는 공급처 단위로 대량 배출돼 안정적인 원료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하베스트는 현재 오비맥주, 서정쿠킹 등 국내 맥주·식혜 부산물의 약 56%를 배출하는 6개 업체와 무상으로 독점 공급받는 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 밖에 CJ제일제당 등 몇몇 대형 식품업체들과 추가적으로 두부, 막걸리 등을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을 인수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 거래는 양쪽 당사자가 모두 윈윈하는 모양새다.
부산물 배출업체 입장에선 추가 비용(환경개선부담금)을 들이지 않은 채 처분할 기회를 얻고, 이를 가져가는 리하베스트는 공짜 원료를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 식품 찌꺼기에서 재수확한 대체밀가루 '리너지'
리하베스트가 국내 푸드 업사이클 분야를 개척하면서 첫 번째 제품으로 선보인 것이 밀가루 대체 식품 원료인 리너지 가루다.
에너지를 지구와 사람에게 다시 준다는 의미로 명명된 리너지 가루는 맥주박이나 식혜 부산물 등을 재처리해 만든 분말이다.
시리얼, 피자, 과자, 빵류 등 밀가루로 만드는 모든 식품 제조에 대용될 수 있다고 한다.
리하베스트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식품 부산물을 이용해 영양가 높은 리너지 가루를 개발하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1년여 동안 110톤(t)가량의 부산물을 사용해 미생물을 적절하게 컨트롤하면서 세척, 탈수, 건조, 분쇄로 이어지는 실험을 200차례 넘게 반복했다고 한다.
민 대표는 이 과정을 거쳐 고(高)영양, 가격경쟁력, 친환경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리너지 가루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리너지 가루는 일반 밀가루와 비교해 함유량이 단백질은 2배, 식이섬유는 21배에 달하고 가격은 저렴하다는 것이 민 대표의 설명이다.
또 리너지 가루 1㎏은 탄소 배출량 11㎏, 물 사용량 3.7t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고 그는 강조한다.



라하베스트는 사업 초기에 낮은 인지도 때문에 파일럿 공장에서 최대 월 5t가량 생산한 리너지 가루와 이를 원료로 만든 소비자 제품의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친환경적인 측면과 건강식품이란 점이 부각하면서 순풍을 타기 시작했다.
민 대표는 2020년 푸드 업사이클 제품을 처음 내놓았을 때 그저 그랬던 반응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키워드가 뜨면서 바뀌었다고 했다.
그 결과로 본 공장 가동을 앞둔 상황에서 리너지 가루는 물론이고 이를 사용한 리너지 바(bar) 같은 소비자 제품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기도 화성에 자리 잡은 리하베스트 본 공장은 시운전을 거쳐 내달 중순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민 대표는 월 120t의 리너지 가루를 생산할 수 있는 화성 공장은 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푸드 업사이클 공장이라고 말했다.

◇ 창업 계기 된 대장암 발병…"세상에 좋은 일 좀 해야겠다"
국내 푸드 업사이클 시장에서 선구자가 된 민 대표가 샐러리맨에서 창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느닷없이 찾아온 병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으로 이주한 조부모를 둔 민 대표는 태어난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재미교포 3세다.
대학 졸업 후 한 바이오텍 업체 및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5년 정도 일하다가 다국적 회계컨설팅 기업인 PwC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 근무를 자원해 2011년부터 한국 지사에서 경영전략 컨설턴트로 일했다.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다니기도 한 민 대표는 한국 생활 7년째이던 2018년 자신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초기 대장암 발병 진단을 받았다.



민 대표는 힘든 항암 치료를 겪으면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얻은 답이 "세상에 좋은 일을 좀 해야겠다"라는 것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당시 미국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 푸드 업사이클링이었다.
암 발병으로 휴직했다가 이듬해인 2019년 PwC를 그만둔 민 대표는 사실상 쓰레기 취급을 받는 식품 부산물을 식량자원으로 바꾸는 도전에 나섰다.
항암 치료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민 대표가 푸드 업사이클 사업을 위해 처음 문들 두드린 곳이 식혜 생산업체인 서정쿠킹이다.
민 대표는 "그냥 랜덤하게(무작정) 서정옥 (서정쿠킹) 회장을 찾아갔다"며 서 회장이 자신의 사업 구상을 전적으로 믿고 도움 준 것이 리하베스트의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현재 리하베스트의 연구·개발 담당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민 대표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성공 정의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점차 많은 소비자가 버려지던 식품 부산물을 음식 재료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한 스타트업이 있고 없음으로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느냐가 스타트업 성공의 척도로 본다고 말했다.



◇ 식품 원료로 못 쓰던 맥주박의 재탄생…"우리나라 진짜 대단"
현재 푸드 업사이클 업계가 주된 원료로 활용하는 것은 맥주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맥주박(粕·지게미)이다.
그러나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맥주박은 맥주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식품 원료로 쓸 수 없도록 묶어 놓은 주류관리법상의 규제 때문에 버리거나 퇴비나 사료 제조에만 활용할 수 있었다.
이것을 바꿔놓는 데 민 대표가 기여했다.
민 대표는 푸드 업사이클 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이런 제도가 있는 것을 알고 국내 메이저 주류업체인 오비맥주를 도와 규제 혁신 민원을 함께 제기했는데, 순환경제의 중요성에 눈을 돌린 국세청과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가 불과 8개월 만에 해당 규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민 대표는 아시아 최대의 맥주 소비국인 우리나라에선 연간 42만t의 맥주박이 나오고 그중 절반가량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진다며 정부 관계부처가 발 빠르게 제도를 개선해 맥주박을 식량자원으로 재활용할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에서라면 패스트 트랙 절차를 밟더라도 7년은 걸렸을 것"이라며 이렇게 빨리 규제가 개선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국내 넘어 해외로…베트남·인도네시아 '숍 인 숍' 공장 건설 추진
리하베스트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사업 모델은 리하베스트가 '숍 인 숍'(shop in shop) 형태로 외국 맥주 업체 현지 공장 안에 리너지 가루 원료 생산 공장을 지어 운영하는 것이다.
베트남 하이퐁맥주그룹, 인도네시아 빈땅맥주 등과는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이미 체결했고, 일본의 한 맥주 대기업과는 협업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푸드 업사이클 영역의 국내 첫 상장 기업을 꿈꾸는 리하베스트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제휴업체가 관리하는 유통망을 통해 현지의 첫 푸드 업사이클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민 대표는 푸드 업사이클이 식량문제 등의 지속적인 해결 방안으로 굉장히 좋은 사업 모델이긴 하지만 수요가 생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면서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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