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러 사이 균형모색' 벨라루스 외무장관 돌연사에 의혹 증폭

입력 2022-11-30 11:09   수정 2022-11-30 15:01

'서방-러 사이 균형모색' 벨라루스 외무장관 돌연사에 의혹 증폭
푸틴이 참전 압박하는 미묘한 시점…고개드는 '독살설'
"벨라루스 권력층서 드물게 서방과 말 통하는 인물" 평판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러시아 동맹국 벨라루스 외무장관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서방간 균형 외교를 모색해 온 몇 안되는 벨라루스 고위 관료 중 한명이 갑작스럽게 죽었기 때문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6일 사망한 블라디미르 마케이 벨라루스 외무장관(64)의 죽음을 29일(현지시간) 집중 조명했다.

2012년부터 벨라루스 외무장관으로 재직해 온 그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이너서클의 일원으로 다른 정부 관료와 같이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친러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동안 서방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소수의 고위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소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죽었으나 관영 언론은 그의 사망 소식을 짧게 전할 뿐, 정확한 사인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사망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무엇보다 현재 벨라루스가 처한 상황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대해 참전을 포함한 더욱 적극적인 전쟁 지원을 끈질기게 요청하고 있으나 벨라루스는 서방의 제재 등을 우려해 러시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립서비스'로만 버티고 있다.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러시아군이 주둔할 땅을 내주긴 했지만 직접 참전해 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는 애써 외면해왔다.
마케이 장관은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꾸준히 키워가는 상황에서 미국, 유럽연합(EU)과의 접점을 모색하려 한 루카셴코 대통령의 일련의 실패한 시도를 적극 도운 인물이라고 NYT는 평가했다.
마케이는 독재자 루카셴코 대통령과 척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루카셴코 정부 내에서 독특한 시각을 고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 완전히 예속되지 않으려면 서방과 관계를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러시아는 적잖이 불편해했다.
2020년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벨라루스를 전격 방문해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미국이 벨라루스산 석유를 구매하는 등의 합의를 했는데,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마케이 장관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마케이 장관은 이번 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면담이 예정돼 있었다. 동시에 폴란드에서 열리는 유럽안전보장협력기구(OSCE) 연례 회의에도 참석할 계획이었다. OSCE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 국제기구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쟁을 감시해 왔다.

그의 죽음을 전한 관영 매체의 보도 태도도 석연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소 건강했던 그가 갑자기 죽었지만 사인 등에 대한 자세한 보도는 전혀 하지 않고, 외무장관으로 10년간 재직해 온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등의 관례적인 기사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영 통신 벨타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조의를 표했다는 단 한 줄짜리 기사만 보도했다.
마케이 장관이 수도 민스크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있지만 점차 그의 독살설이 퍼지고 있다.
특히 마케이 장관의 사망 며칠 후 감옥에 수감 중인 반체제 정치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일도 발생해 의문은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AFP통신 등은 투옥 중이던 벨라루스의 대표적인 야권 정치인인 마리야 콜레스니코바(40)가 29일 갑자기 위중한 상태에 빠져 병원에 이송돼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4선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대선 불복 운동을 벌이다 수감된 그는 우크라이나 송환 제의를 뿌리치고 벨라루스에 남아 정치투쟁을 벌여온 인물이다.
NYT는 콜레스니코바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독극물을 이용해 반체제 인사나 정적 등을 제거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아왔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라이호르 아스타페냐 연구원은 "마케이 장관은 분명 벨라루스 정권의 일원이었지만 서방이 현 정권의 정치 논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루카셴코 대통령은 다시 서방과 얘기가 가능한 인물을 외교장관으로 세울지, 아니면 러시아에 대한 굴복을 선택하며 서방과 담을 쌓을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bana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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