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주택가 한복판에 스타트업처럼…일본 요양병원의 실험

입력 2022-12-27 12:00  

도쿄 주택가 한복판에 스타트업처럼…일본 요양병원의 실험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카페 같은 분위기에 의료진 가운도 없어
지역포괄케어로 병원-재택진료 연계…"의료기관 부담도 감소"

(도쿄=연합뉴스) 조민정 기자 = 65세 이상 노인 인구 2천630만명, 고령화율 29%. 노인이 포함된 가구 수가 총 가구의 50%를 차지. 우리보다 20여년 앞서 2005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현주소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일본 의료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늘어나는 요양·돌봄 수요를 기존 의료전달체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생의 마지막을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는 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된 '지역포괄케어'가 그 대표적 사례다.
급성기 치료를 마친 이들을 되도록 집으로 돌려보내되 간호, 재활, 생활지원 등의 서비스를 자택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 정부가 재택치료·요양 수가를 높이는 등 독려에 나서면서 방문 개호(介護·곁에서 돌봐줌) 서비스를 하는 업체 수는 작년 말 기준 3만4천여곳에 달한다. 수요자인 노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의료기관들의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연합뉴스는 지난 19일 도쿄 주택가 한복판에 지난해 문을 연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을 찾았다.
이 병원은 회복기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 일시 입원하는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요양병원이나 재활의료기관에 해당한다. 목표는 병원 이름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기'다.
장기 입원이 일상인 보통의 요양병원과 달리 이곳의 의료진은 환자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또 퇴원 후 방문 진료·간호·재활도 담당하고 있어 입·퇴원에도 의료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날 3층에서는 10여명의 직원들이 긴 테이블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주제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환자와 집으로 모실 환경이 되지 않는다며 요양시설로 가기를 원하는 가족 사이의 의견 차이를 좁히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회의를 주도하던 간호사는 취재진에게 "환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가정으로 돌아갈 경우 어떤 서비스를 통해 가족이 우려하는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해 가족을 설득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환자의 신체 회복을 돕는 것뿐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집에서 진료·간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까지도 이 병원의 역할인 셈이다.
이런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은 이미 일본에 자리 잡은 제도이지만, 이 병원에서 눈에 띄는 점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을 중심으로 꾸려진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지역케어매니저 등이 직역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는 점이다.
방문 진료·간호·재활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5층에 마련된 직원 사무실을 베이스 삼아 병원 내외부를 오간다. 사무실은 자유석으로, 직원들은 패드를 들고 분주히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었다. 이 병원엔 원장실이나 의국, 간호스테이션 등 병원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공간이 없다. 의사, 간호사들은 흰색 가운도 입지 않는다.
이같은 근무 형태는 수많은 개호시설이 있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다.
미즈노 산타 원장은 취재진에게 "하얀 벽과 천장, 가운 입은 의사들이 가득한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불편함이나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삶의 막바지까지 온 분들이 그런 감정 없이 보다 편안하게 지내기를 바랐다"며 "환자들이 의사, 간호사 등과 손자·손녀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했다.
투명유리로 된 1층에는 외부인도 이용이 가능한 카페와 로비, 재활치료실이 공간 구분 없이 배치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재활 과정을 불특정 다수가 보게 돼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즈노 원장은 "그런 감정을 극복하는 것부터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라고 했다. 그의 말은 병원 밖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몸이 좀 불편한 노인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도 들렸다.



일본은 고령화 진행에 따라 고령자가 증가하고 가족의 부담이 증가하자 2000년 사회보험방식으로 개호보험제도를 도입했다. 40세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고 65세 이상이 되면 거택(재가)서비스, 지역밀착형서비스, 시설서비스 등에 급여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요개호·요지원 등급을 인정받으면 케어매니저가 각 개인에게 필요한 '케어플랜'을 작성하고 이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은 17.49%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이지만 이러한 재활치료 및 일상복귀 지원은 미진한 상황이다.
2020년 12월부터 뇌혈관질환 환자의 퇴원 및 재활을 돕는 시범사업이 진행됐지만 현재 전국에 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운영 중인 곳은 45곳에 불과하다.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에게 방문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시범사업도 최근에야 시작했다.
재택의료의원 21곳을 운영하는 의료법인 유쇼카이의 사사키 준 CEO는 "의사부터 간호사, 재활치료사 등 다직종이 환자를 지원하기 때문에 생활 만족도가 높아진다"며 "의료비 측면에서 봐도 재택진료를 하면 평균 입원일이 41.2일에서 12.5일로 줄어든다. 국가 전체적으로는 연간 입원일이 21만일가량 줄어들게 된다"고 재택진료의 효과성을 강조했다.
chom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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