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영면…'두 교황' 시대 10년만에 종료(종합3보)

입력 2023-01-06 02:37   수정 2023-01-06 14:45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영면…'두 교황' 시대 10년만에 종료(종합3보)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주례 "그의 지혜, 친절함, 헌신에 감사"
선종 닷새 만에 장례 미사…수많은 신자들 "즉시 성인으로" 외쳐
장례 미사 뒤 요한 바오로 2세가 안장됐던 묘역에서 영면
독일·伊 정부 대표단만 공식 초청·대만은 특사 파견 …5만명 운집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박수현 통신원 = 생전에 교황직을 사임하며 가톨릭 역사를 새로 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미사가 이날 오전 9시 30분(한국시간 오후 5시 30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현직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주례했다. 가톨릭 2천년 역사상 후임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집전한 것은 1802년 비오 7세 교황(후임)과 비오 6세 교황(전임) 이후 이번이 역대 2번째다.
즉위 8년 만인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며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에 생전 퇴위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이승과 영원히 작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생전에 밝혔지만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하며 전임 교황을 예우했다.
장례 미사가 열리기 40분 전인 오전 8시 50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시신이 누인 소박한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 바깥으로 운구돼 광장의 야외 제단 앞에 놓였다.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재위한 8년간 사제들의 성범죄와 결연히 맞서 싸운 점 등이 업적으로 기록됐다고 교황청은 설명했다. 이 문서에서 베네딕토 16세는 '명예 교황'으로 지칭됐다.
관이 운구되자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길고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오랜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관 위에 펼쳐진 복음서에 입을 맞췄다.
휠체어를 타고 광장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편한 무릎 탓에 앉아서 장례 미사를 집전했다.
장례 미사는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그레고리안 성가와 함께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그가 몇 년간 우리에게 베풀어준 지혜, 친절함, 헌신에 감사하다"며 "베네딕토여, 마침내 영원히 그분(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대의 기쁨이 완성되길 빕니다"라고 안식을 기원했다.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니기에 교황청은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그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이번 장례 미사에 공식 초청했다.



이탈리아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조르자 멜로니 총리·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독일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올라프 숄츠 총리,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 등이 참석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 등 왕족들과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헝가리,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토고, 가봉 등 유럽과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광장 중앙에 마련된 귀빈석에 자리 잡았다.
대만 중앙통신사(CNA)는 천젠런 전 부총통이 차이잉원 총통의 특사 자격으로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이 다스리는 국가인 바티칸시국은 유럽 국가로는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1951년 교황청이 대만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자 교황청에 단교를 선언했다.
중국은 2021년 10월 교황청에 외교 관계 수립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대만과 단교를 요구했으나 교황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주교황청 대사가 자국을 대표해서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와 사무국장인 신우식 신부 등이 한국 천주교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도 참석해 한마음으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영면을 기원했다.



장례 미사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고, 미사가 끝난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지하 묘지 안장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운구 행렬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잠시 멈췄다. 휠체어에서 일어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호를 긋고 관 위에 손을 올린 뒤 잠시 묵상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묘지에서 진행되는 안장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붉은 띠로 관을 둘러 닫고 아연으로 만든 두 번째 관과 참나무로 만든 세 번째 관에 차례로 모셔졌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고,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바로 그 묘역에서 영면한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 신학의 연장선에서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이었던 베네딕토 16세와 진보적이며 개방적인 프란치스코의 관계는 2019년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번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천700명이 참석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약 5만명이 광장에 운집했다.
수많은 신자들은 장례 미사가 끝난 뒤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쳤고 같은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기도 했다.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새벽 6시 30분부터 장례 미사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 줄이 길게 이어졌다고 전했다.
앞서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안치됐던 성 베드로 대성전에는 사흘간 약 20만명이 방문해 조문했다고 교황청이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는 장례 미사가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보안요원 1천명 이상을 동원해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교황청 주변 영공은 폐쇄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전국의 관공서에 조의를 표하는 반기 게양을 지시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지난달 31일 바티칸시국의 한 수도원에서 95세로 선종했다.
고인은 2013년 교황직에서 사임 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 절차까지 마무리됨에 따라 후임 교황과 전임 교황이 공존하는 '두 교황' 시대는 10년 만에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신마저 사임해 세 명의 교황 체제가 되면 후임 교황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제 그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건강을 이유로 사임 가능성을 여러 번 언급했다.



chang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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