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러 시진핑, 新국제관계 깃발…러·서방 사이 딜레마 여전

입력 2023-03-22 12:38   수정 2023-03-22 13:46

방러 시진핑, 新국제관계 깃발…러·서방 사이 딜레마 여전
美에 맞선 협력강화 뜻 모았지만…우크라전 중재는 '빈손'
다가가는 러, 거리두려는 中 모습도…러 대중국 의존도 심화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한 지 열흘만에 이뤄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러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최대 파트너와 함께 선포했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시 주석은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의 딜레마를 재차 확인해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은 여전히 모호성의 영역으로 남겨 뒀고,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 중러관계 강화 통해 '미국 일극체제 바꾼다' 의지 재확인
우선 중국 입장에서 이번 정상회담(21일) 공동성명의 키워드는 '중러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와 '신형 국제관계 구축'으로 보였다.
성명의 초반부는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둘러싼 말의 상찬이었다.
"양측의 부단한 노력으로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는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했고, "중러 관계는 냉전 시대의 군사·정치 동맹과 유사하지 않고, 그런 국가관계 모델을 초월"했다고 평가했다.
또 "러시아는 번영하고 안정적인 중국이 필요하고, 중국은 강대하고 성공한 러시아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 문장은 일각에서 '정략결혼'으로 평가하는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밀월 관계에 담긴 두 사람의 속내를 함축적으로 담은 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면서 패권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중러가 긴밀하게 협력하며 신형 국제관계 구축을 추동해왔다고 성명은 강조했다.
성명은 또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대호주 핵추진 잠수함 수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아태 국가들 간의 협력 강화 등 미국의 '중국 포위' 행보에 대한 반대 또는 우려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일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하며 총 집권기간 15년으로 가는 장기 집권 태세를 구축한 시 주석이 이번 방러에 설정했던 목표가 읽히는 대목이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이 미국에 다음가는 군사대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단극적 세계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시진핑, 대러 군사 지원도 휴전 중재도 '모호성'의 영역에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당면한 현실 속에서 시 주석은 어느 한 쪽을 쉽게 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성명을 보면 경제·무역·인적 교류를 포함한 다양한 협력 강화 방안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됐지만 양국 관계와 중국의 대외 관계에서 중요한 변수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중국에 대러 무기지원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대서방 관계 개선을 당분간 포기하는 결단을 하지 않는 한 대놓고 군사적 지원 방안을 합의문에 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결국 그 예상대로 된 것이다.
다만 중국이 군·민 이중용도 품목을 일반적 무역거래의 양태를 취해가며 러시아에 보내는 방안 등에 양 정상이 '테이블 아래'에서 합의했을 수 있다는 것이 서방의 시각이다.
또 국제사회가 주목했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새로운 평화협상 중재 구상도 이번 공동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서방은 중국의 중재 카드가 러시아의 점령지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거라며 시 주석 방러 직전 견제구를 던진 상황이었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요구하는 '철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기에 중재의 공간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동성명은 우크라 전쟁과 관련, '책임있는 대화 촉구', '독자제재 반대' 등과 함께 지난달 24일 중국이 제시한 '정치적 해결에 관한 입장'을 환영한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담는 선에 그쳤다. 그에 따라 외신에서 보도된 시 주석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는 양상이다.
◇ 큰그림 그렸던 시, '현찰' 필요했던 푸틴…'초점' 달랐던 두 정상
이번 회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우선 순위가 달랐던 점이 공동성명과 회담을 둘러싼 여러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중국의 물자와 '현찰'이 절실했다면 중국은 미국과의 장기적 전략경쟁에서 최우선 파트너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큰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가 서방, 특히 그나마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유럽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중이 읽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신문 명보는 22일 이번 회담을 평가하면서 "러시아 측은 비교적 열정적인 용어를 쓴 반면 중국의 어조는 비교적 신중했다"며 "러시아 측이 중국에 요구하는 것이 비교적 많았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또 "시진핑 주석이 중러 관계 발전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것은 자국 근본 이익과 세계 발전 대세에 기초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입장이었다"며 "중국 측은 시종 러시아 측의 과도한 친밀감 표현을 약간 꺼리면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명보는 시 주석 방러 첫날인 20일 푸틴 대통령과의 첫 회동 소식을 전한 중국 관영 신화통신 보도에서 '약속에 따라'의 의미인 '잉웨(應約)'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중러 밀월관계를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고 짚었다. '잉웨'는 외국 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거나 비우호적 국가 인사와의 회동 또는 통화 때 쓰는 용어로, 방문국 정상과 만날 때는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라고 명보는 소개했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명확해진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서방의 대대적인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양국 간 무역 확대를 시종 강조한 점이나,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시 주석의 어젠다인 '위안화 세계화'를 적극 지지한 대목 등을 보며 중국과 러시아의 '갑을관계'가 우크라 전쟁 통에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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