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KT 대표 선임 파행…또 '낙하산'으로 끝나면 곤란하다

입력 2023-03-24 18:03  

[연합시론] KT 대표 선임 파행…또 '낙하산'으로 끝나면 곤란하다


(서울=연합뉴스) 여권과 검찰, 그리고 대주주인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는 윤경림 KT 대표이사 후보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KT의 차기 회장 선출이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KT 이사회는 23과 24일 연이어 간담회를 열어 사의 철회를 설득했으나 윤 후보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틀 전 이사회에 "더는 버티기 힘들다.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대표 선출 문제로 5개월째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KT의 경영 공백은 더욱 장기화할 전망이다. 구현모 현 대표가 외풍으로 연임을 포기하고 이후 이사회에서 새로 낙점받은 윤 후보까지 끝내 사퇴하면 대표 대행 체제가 불가피하다. 당초 대표이사 선임 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던 오는 31일 정기 주주 총회 전까지 새 후보를 찾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발맞춰 전 세계 기업들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내의 대표적 통신업체인 KT가 사실상 경영 마비 상태에 이른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KT 대표 선임 절차가 잇따라 파행을 겪는 직접적 배경은 여권의 공세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일 전·현직 임원으로만 채워진 차기 대표 후보 면접 대상자 4명의 명단이 공개되자 "그들만의 리그", "이권 카르텔' 등의 거친 말로 맹비난했다. 검찰과 경찰을 향해서는 "KT 구 대표와 일당들에 대한 수사를 조속히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구 대표와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진 윤 후보에 대해서는 구 대표의 '아바타'라고 지목했다. 민간 기업의 대표 선임 문제와 관련해 소관 상임위의 여당 의원들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공개 비판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KT 노조도 지적한 것처럼 소유 분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이사회를 장악해 연임을 이어가는 행태는 마땅히 시정해야 할 폐단이다. 이번 기회에 KT부터 반드시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여권의 대체적인 기류라고 한다. 기자회견 이후 시민단체의 고발과 검찰의 수사가 이어지고 국민연금은 물론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KT의 2, 3대 주주 현대차, 신한은행까지 부정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윤 후보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제가 된 은행과 마찬가지로 통신 역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산업 분야이다. 이런 공공재적 성격 때문에 관련 기업 상당수는 과거 공기업이거나 정부 투자 기업이었다. 국가가 과점을 용인하고, 또 경영에 미치는 정부 정책의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규제 산업으로도 꼽힌다. 따라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으려면 경영이 투명해야 하고 지배구조 또한 건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적용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민영화된 지 20년이 넘은 사기업의 경영에 여권이 대놓고 개입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윤 후보가 사퇴할 경우 새 후보로 친정부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모든 소동이 '낙하산'을 내려보내기 위한 빌드업 과정은 아니었길 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는 물론 포스코, KT&G 등 소위 '주인 없는 회사'들이 CEO 선임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일이 반복되고 있으나 이들 기업은 권력의 전리품이 아니다. 소유 분산 기업들에도 엄연히 주인이 있다. KT의 경우 지분의 57%를 소액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한 주도 없는 정부·여당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과 시장 경제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일이다. 거버넌스에 문제가 있다면 주주들이 나설 것이고, 그런 내부적 노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과 제도로 규율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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