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권도형 누가 데려갈까…한미 신병확보 '외교전' 본격화(종합)

입력 2023-03-30 16:38   수정 2023-03-31 14:26

'테라' 권도형 누가 데려갈까…한미 신병확보 '외교전' 본격화(종합)
몬테네그로 언론, 법무장관 인용해 "미국이 먼저 신청"…韓 법무부 "우리가 먼저 신청"
"범죄 장소·국적 등도 고려" 우선권 단정 어려워…몬테네그로 법원이 '칼자루'
실제 송환까지 장기전 불가피 전망…"몬테네그로 '위조여권' 처벌이 먼저"


(포드고리차[몬테네그로]=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50조원 이상의 피해를 안긴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한 한미 '쟁탈전'이 본격화됐다.
몬테네그로 당국은 자국에서 위조 여권 사용으로 체포한 권 대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자 29일(현지시간)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르코 코바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권 대표에 대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고 확인했다.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가 뒤늦게 가세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한미가 권 대표 송환을 두고 각축을 벌이게 됐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경쟁자가 줄어든 셈이지만 국내 송환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권 대표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의지를 드러내며 자국 송환을 위해 분주하게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은 지난 23일 권 대표가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위조 여권 사용으로 체포되자마자 그를 증권 사기 등 총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은 몬테네그로에 대사관이 있고, 한국의 경우 몬테네그로에는 우리 대사관이 설치돼 있지 않아 인접 국가인 세르비아 대사관이 몬테네그로를 관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발 빠르게 나섰다. 28일에는 주세르비아 한국 대사관 관계자를 통해 몬테네그로 외교부·법무부 당국자들과 잇따라 면담하고 수도 포드고리차 외곽에 있는 스푸즈 구치소에 수감된 권 대표를 접견하는 등 신병 확보 외교전에서 미국에 뒤처지지 않도록 분주하게 나선 상황이다.
이와 관련, 범죄인 인도 요청에서 미국이 한 발 더 빨랐다는 현지발 언론보도가 나왔다.
몬테네그로 유력 일간지 '비예스티'는 코바치 장관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보다 먼저 권 대표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법무부는 현지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한국이 미국보다 더 빨리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권 대표가 체포된 지 하루 만인 24일 인도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다만 송환국 결정은 '선착순'이 아니기에 어느 나라가 범죄인 인도 청구를 먼저 했다고 해서 권 대표 신병 확보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권 대표를 어느 국가로 보낼지는 몬테네그로 법원 판단에 달렸다. 국제법상 피의자를 체포한 국가가 송환국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여러 나라가 동시에 인도를 요청할 경우, 범죄의 심각성이나 범죄자의 국적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
코바치 장관은 회견에서 "범죄의 심각성, 범죄 장소, 범죄인 인도 청구 순서, 범죄인 국적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일단 범죄인 인도 청구 순서에서 한발 앞섰지만 송환 국가를 정할 때 범죄인 국적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바치 장관 역시 "현 단계에서 두 국가 중 어느 쪽이 우선권이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직 한미 두 국가 중 누가 유리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국내 송환 가능 여부는 우리 법무부가 얼마나 강력한 혐의와 증거를 제시하고 몬테네그로 법원을 설득하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테라·루나 사태를 수사해온 서울남부지검 금융범죄합동수사단은 권 대표 신병 확보와 동시에 공범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에 대해 전날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 검찰은 국내 피해자들의 빠른 피해 변제를 위해서라도 국내 송환이 필요하다며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만약 권 대표가 미국으로 먼저 송환된다면 미국에서 재판받고 형기를 채운 뒤 한국에서 다시 재판받게 되지만 한국에 차례가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이지만,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해 100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국내 기준과 법도 아직 없다.
일부 국내 피해자들이 권 대표가 미국에서 재판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몬테네그로에서 권 대표의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송환국이 어디로 결정되든 실제 송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코바치 장관은 "권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해 몬테네그로에서 형을 선고받으면, 형기를 복역해야만 인도를 요청한 국가로 인도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몬테네그로 현지법에 따르면 공문서 위조가 유죄로 확정되면 최저 3개월에서 최고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앞서 권 대표의 몬테네그로 현지 법률 대리인인 보이스라브 제체비치 변호사는 몬테네그로의 아드리아해에 면한 항구도시인 부드바에 있는 모스크바 호텔에서연합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위조 여권 사건과 관련해 1심 판결이 불만족스럽다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송환 결정도 마찬가지다. 몬테네그로 당국의 신병 인도 결정에 대해 권 대표 측이 불복해 소송으로 맞설 가능성이 있어 한국이든 미국이든 송환이 당장 현실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장기전으로 갈 공산이 크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체비치 변호사는 권 대표가 신병 확보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와 미국 중 어느 국가로 송환되길 원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chang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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