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의 '역설'…"차에 넣을 기름이 없다"

입력 2023-06-23 06:49  

석유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의 '역설'…"차에 넣을 기름이 없다"
석유기업 부패·국가 에너지 정책 부실 등으로 고질적 문제돼
일부 농민, 운송 못한 과일 폐기했다 법위반으로 체포되기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석유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고질적인 연료난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농민들이 차량에 넣을 기름 부족으로 운송하지 못한 농작물을 폐기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베네수엘라 주요 시민사회단체인 '에스파시오 푸블리코'는 22일(현지시간) 공식 소셜미디어와 홈페이지에 낸 논평 등을 통해 "휘발유 부족에 항의하는 농부 2명이 최근 잇따라 체포됐다가 풀려났다"며 "정부가 연료난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와 베네수엘라 법무부 발표를 종합하면 지난 19일 서부 메리다주 푸에블로야노에서는 농부 이스네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맘벨이 당근을 내다 버렸다가 공정가격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당국에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부족해서 당근을 유통업자에게 보내지 못했다"며 "그냥 썩어나가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튿날에는 트루히요주 카라체에 사는 바라사르테 트롬페테로 호나르가 역시 운송하지 못한 토마토를 강물에 대량으로 던져넣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호나르가 토마토를 강에 쏟아내는 모습은 동영상으로 녹화돼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면서,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높은 관심을 끌었다.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 듯 타레크 윌리엄 사브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두 사람의 얼굴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며 "공정가격법을 위반한 자들은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엄벌 의지를 밝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식량을 제멋대로 없애버리는 사람은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근본적인 사태 해결은커녕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두 농부를 법정에 서게 한 연료난은 사실 베네수엘라에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유국이지만, 역설적으로 자국민들은 고질적인 휘발유·경유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은 익숙한 풍경이라고 시민단체가 꼬집을 정도다.



연료난을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인 PDVSA(Petroleos de Venezuela, S.A)의 부실 경영과 국가 에너지 정책 실패 등을 들 수 있다.
1976년 설립된 PDVSA는 한때 매출액 기준 세계 27대 업체(2009년)에 들 정도로 성장했지만, 대규모 비위 의혹으로 최근 사정의 표적이 됐다.
경찰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용인한 것으로 알려진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임직원과 관계 공무원을 수조원대의 석유 판매금 횡령 등 혐의로 줄줄이 체포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부정부패 사건으로 공직자들이 수사를 받는 건 이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네수엘라 제2의 도시인 마라카이보에서는 이번 주에 석유가 호수에 대량 유출돼 환경 오염 우려까지 야기하는 등 주민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실기도 지적사항 중 하나다. 정제 설비 투자 등을 제때 하지 않으면서 한때 최대 일 300만 배럴에 달했던 석유 생산량이 급전직하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마두로 정권은 줄곧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자국 석유산업이 쇠퇴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베네수엘라 시민단체는 3년 전인 2020년 격렬한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극심했던 연료난 사태를 상기시키며 "체포와 검열 패턴을 반복했던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힐난했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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