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게임위 전산망 비리…심의제도 개혁 힘 실리나

입력 2023-06-29 16:40  

사실로 드러난 게임위 전산망 비리…심의제도 개혁 힘 실리나
사업 진행 내부 감시 사실상 없어…기관 도덕성·신뢰성에 큰 타격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전산망 비리' 의혹이 감사원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게임 심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감사원은 29일 게임위 비위 의혹에 대한 국민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전산망 구축 비리에 관여한 현직 게임위 사무국장 최모 씨를 정직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산망 구축 실무를 담당했다가 지난해 5월 게임위를 떠난 A팀장에 대해서는 현재 근무처인 한국조폐공사에 비위 사실을 통보하라고 조치했다.
감사원은 게임위가 자체등급분류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사업 검수 및 감리를 허위로 처리, 최소 6억 원 이상의 손해를 발생시켰다고 봤다.
아울러 자체등급 분류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용역을 수행하면서 외부 업체에 납품이 확인되지 않은 물품과 용역 대금을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 내부감시 사실상 없어…총체적 부실 드러나
사업 진행과 검수, 회계 처리를 모두 몇 명이 담당하는 게임위의 부실한 업무 처리 절차는 감사원이 이날 발표한 49페이지 분량 감사 결과서에 그대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A팀장은 1·2단계로 진행된 전산망 구축 사업에서 1단계 과업의 진도율이 50%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기간 내에 사업비를 집행해야 한다"며 개발 담당 업체 측에 준공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A팀장은 뒤이어 진행된 2단계 사업에서도 허위로 준공계를 제출받은 뒤 '계약 조건 및 내용을 모두 이행했다'는 검사 의견을 달아 검수 보고서를 직접 만들었다.
최 사무국장은 이런 내막을 모두 A팀장으로부터 보고받아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결재해 줘 외부 업체에 대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또 회계기간 내 사업이 완료되지 않은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해 사업 기간을 연장하거나, 국고보조금 예산을 이월하도록 해야 하지만 허위 정산보고서를 결재해 다음 연도 보조금을 계속 지급받았다.
이밖에 A팀장과 최 사무국장은 2020년 언론에 전산망 구축 비리 의혹이 보도되자 허위 보고 자료, 해명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과정에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무자인 A팀장과 사무국장 외에는 해당 사업 내용이나 예산 집행의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게임위는 감사원에 "사업 부서, 검수 및 회계 담당 부서를 분리해 내부 통제를 철저히 하는 등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 불공정 등급분류 관행에 뿔난 게이머들, 감사청구에 '줄서명'
게임위가 출범 이래 처음으로 받은 이번 감사원 감사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군 '불공정 등급분류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게임위가 전체 이용가∼15세 이용가로 서비스되던 일부 모바일 게임 운영사 측에 정확한 심의 절차 공개 없이 '이용 등급을 상향하거나 내용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일부 게임은 직권으로 이용 등급을 상향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게이머들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관(官) 주도의 후진적 게임 심의 제도에 반발했다.
이들은 게임위에 대량의 민원을 제기해 항의하는 한편,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게임물관리위원회 예산·운영상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게임위는 등급 분류 회의록을 정보공개 청구에도 불구하고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업무 관행, 저작권 침해 정황이 뚜렷한 도박성 아케이드 게임기에 무더기로 등급분류를 내준 사실 등이 드러나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2020년 한 차례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됐으나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던 전산망 비리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민 5천4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당시 여의도에서 하루 동안 진행된 감사 청구 연대서명에는 전국에서 많은 청년층 게이머가 참여하며 한때 국회 정문에서 서강대교까지 400m가 넘는 장사진 행렬이 형성되기도 했다.
감사원은 예비조사를 거쳐 같은 해 12월 정식 감사에 착수했고, 두 차례의 감사 기간 연장 끝에 이날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 게임위 조직개편 예고에도 거세지는 게임 심의제도 개혁론
게임위는 그간 졸속 심의와 사후관리로 게이머들의 신뢰를 잃어왔다.
작년 11월에는 게임위가 여러 국내외 유명 게임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지식재산권을 도용한 도박성 아케이드 게임기에 무더기로 등급 분류를 내어 줘 유통을 허가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기도 했다.
당시 게임위가 통과시킨 게임 중에는 전반적인 게임 테마와 인터페이스가 2006년 전국을 뒤흔든 '바다이야기'와 비슷한 '바다신2'도 있었다.
게이머들은 '젊은 층이 즐기는 모바일 게임의 선정성 문제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사행성 게임기는 허술하게 심사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게임산업이 발달한 선진국 중 정부 산하 기관이 게임물 등급 분류를 담당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호주 정도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임산업이 발달한 미국,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은 업계에서 설립한 비영리 민간기구가 심의를 담당하고 있다.
또 이들 기구의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물을 유통한다고 불법은 아니며, 모바일 게임은 전적으로 앱 마켓 사업자의 등급 분류에 맡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7년 자체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됐으나,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이나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은 의무적으로 게임물관리위의 등급분류를 받아야 해 '반쪽짜리 자율심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규철 게임위원장은 전날 '2023 게임정책 세미나' 자리에서 "이용자 시각을 반영한 조직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게임위가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로 기관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조직개편만으로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감사 청구인인 이상헌 의원은 "보수적인 게임 검열과 규제로 일관하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정작 기관 내부는 곪아 썩어가고 있었고,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게임 이용자가 감당해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전면적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juju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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