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시위와 스파이게임…전쟁터 같은 주미 러 대사관

입력 2023-07-04 16:17  

끊임없는 시위와 스파이게임…전쟁터 같은 주미 러 대사관
우크라 지지 시위와 러 맞불작전 동시에
주미 러 대사 "미국이 대사관 코앞에서 첩보 작전"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 수도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이 시위와 첩보작전으로 가득 찬 또 다른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적대적이 된 미·러 관계가 펼쳐지는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와 러시아 측의 맞불 작전, 스파이 게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이상한 뉴노멀'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법 전문가인 벤저민 위츠 씨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몇 주에 한 번꼴로 친구들과 함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조명 쇼'를 벌인다.
이들은 대사관의 하얀 색 외벽을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파랑과 노랑으로 물들이는가 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욕설을 우크라이나어로 적어 비추기도 한다.
그러면 러시아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상징하는 하얀색 'Z' 조명을 쏘아 반전 시위자들의 메시지를 덮어버린다.
지난 4월에는 대사관에서 나온 한 건장한 남성이 위츠 씨의 영사기를 우산으로 가로막기도 했다.

보안 카메라가 달린 높은 울타리로 에워싸인 주미 러시아 대사관 단지는 외교관 가족을 위한 거처와 학교, 놀이터, 수영장 등을 구비한 자족적인 공간이다.
주러 미 대사관이나 주미 러 대사관 내 인력 규모는 민감한 사안으로, 미 국무부는 최근 수년간 1천200명에 달했던 주미 러 대사관의 현재 인력 규모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고 있다.
다만, 아나톨리 안토노프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해 1월 외교관과 직원 수를 184명으로 제시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워싱턴 내 러시아 외교관들을 내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순간이라도 외교관계를 유지하려면 양국내 외교공관 주재가 필수이며, 특히 러시아에 수감된 미국인들을 돕기 위해서는 러시아에 외교관들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안토노프 대사는 현재 백악관 인근에 있는 관저가 아닌, 대사관 단지 안에 거주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그는 미 행정부 관리들이나 연방 의원들과 접촉이 제한된 점 외에 대사관 정문 앞에 진을 친 시위자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안토노프 대사는 대사관 단지를 '포위된 요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서 푸틴 반대를 외치는 함성이나 우크라이나 국가 소리, 지나가는 차량이 이를 지지하는 의미로 울리는 경적 등 시위는 일상이 됐다.
인근 주택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나 반러시아 푯말이 걸려있고, 주민들은 대사관을 오가는 러시아인을 향해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상황이 더 심각해질 때도 있다. 대사관을 지나는 주요 도로인 위스콘신가는 간혹 폭탄 위협을 받아 비밀경호국(SS)이 봉쇄할 때가 있다.
러시아 대사관 진입로 인근에는 '젤렌스키로'(Zelensky Way)라는 비공식 명판이 걸렸고, 시위자들이 길 옆 잔디에 우크라이나 국화인 해바라기를 심었다. 그런데 이 꽃들이 어느 날 밤사이 찢겨 나갔다고 한다.

무엇보다 안토노프 대사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미 수사·정보기관이 그의 눈앞에서 스파이를 모집하고 나선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러시아 정보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FBI는 올해 전쟁에 반대하는 러시아 외교관들에게 접촉을 독려하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영상은 러시아 대사관의 전경으로 시작해 대중교통을 타고 시가지를 지나 FBI 본부로 향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CIA도 소셜미디어 텔레그램 등을 활용해 러시아인 정보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최근 강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불만이 CIA 정보 수집에 절호의 기회를 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토노프 대사는 지난해 러시아 타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우리 대사관은 적대적인 환경에서 운영되고 있다"며 "미 안보요원들이 러시아 대사관 앞을 배회하며 접선을 위한 CIA와 FBI 전화번호를 나눠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조국을 고발하고 대통령을 규탄하라"는 미 국무부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대사관 단지 앞 길 건너에는 항상 가리개가 내려가 있고 거주자가 통 보이지 않는 의문의 주택이 있는데, 주민들 상당수는 이곳에 러시아를 감시하는 FBI 요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FBI는 이 같은 소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안토노프 대사는 동료 외교관들을 초청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거나 미국 외 언론인들을 초청한 행사를 여는 등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이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이라고 NYT는 전했다.
또한 그가 불만을 터뜨리는 것 이상으로 러시아 내 미국인들의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고 미 당국자들은 말한다.
당국자들이 보기에 러시아 정부가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시위가 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고 미 외교관들은 모스크바를 돌아다닐 때 러시아 안보요원들의 미행을 받거나 위협받는 일이 지속해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모스크바시는 주러 미 대사관 인근 땅에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광장'이라는 새로운 주소를 부여했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미국 대사관 건너편에 이라크나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영사기로 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cheror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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