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한 짓, 절대 용서 못 해"…오데사 반러 감정 폭발

입력 2023-07-30 12:29   수정 2023-07-31 14:14

"러시아가 한 짓, 절대 용서 못 해"…오데사 반러 감정 폭발
러 '흑해의 진주' 집중 공격에 200년 성당 등 유산 대거 파괴
탈러시아 움직임 가속…"러 인물 이름딴 거리명 바꾸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그들이 한 짓을 봐요. 우리 옆에 살고 우리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러시아가 최근 2주 새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집중 공격해 세계적 유산이 파괴되는 등 피해가 극심해지자 오데사 주민들의 반러 감정이 폭발하고 있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러시아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오데사에서 러시아 색채를 빼려는 기류도 한층 강해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달 17일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가 공격당한 이후 오데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에 대대적 보복 공습을 가했다.
이로 인해 '흑해의 진주'로 불리는 오데사의 옛 시가지와 유명 건축물들이 대거 피해를 보았다.
고대 그리스 식민 도시였던 오데사는 1794년 러시아 제국 예카테리나 2세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정복한 흑해 요새를 해상 관문으로 키워나가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고대 그리스 유적뿐 아니라 네오바로크, 아르누보 등 다양한 양식으로 지어진 19세기 건축물과 조각상이 많아 보존 가치가 높다.
이 때문에 올해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러시아 침공으로 파괴 위협을 받는 오데사의 역사 지구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전체 해상 물동량의 절반 이상을 처리하는 경제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는 이곳을 통해 곡물을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흑해 곡물 협정 연장 중단 선언과 뒤이은 공격으로 오데사의 많은 곳이 폐허가 됐다.

대표적으로 제정 러시아 시절인 1794년 처음 지어졌다가 2000년대 중반 재건된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구세주 변용 성당)이 심하게 부서졌다. 이 성당은 2010년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까지 받은 곳이다.
1923년 지어진 '과학자들의 집'도 러시아의 공격을 받아 처참한 모습이 됐다.
이들을 포함해 이번 러시아의 공격으로 도심에 있는 29개의 유서 깊은 건물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겐나디 트루하노우 오데사 시장은 NYT에 "주민들은 불확실성에 지쳤고, 불안한 밤에 지쳤으며, 잠들지 못하는 것에 지쳤다"면서 "이런 피로는 가장 강한 증오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루하노우 시장은 이어 "만약 성당에 대한 표적 공격이었다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침내 전쟁 2년째에 푸틴은 이곳이 러시아 도시가 아니며, 아무도 그의 군인들을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증오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당 주교 미로슬라우 브도도비흐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사람들이 신성한 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분노했다.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오데사 내 '탈러시아'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친러시아 성향으로 여겨져 온 트루하노우 시장은 지난해 12월 오데사 도심에 서 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을 철거했다. 당시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나, 부모를 잃은 아이에게 왜 우리 도시 한복판에 러시아 여제가 서 있는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번에 파괴된 성당 입구의 대리석 석판에 새겨진 키릴 총대주교의 이름은 흰색 테이프로 가려졌다. 키릴 총대주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해 왔다.
이 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러시아어를 배척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마라트 카시모우 시 도시계획 및 건축 보존 담당 부국장은 NYT에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 영향을 받은 거리 이름을 바꾸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오데사는 알렉산드르 푸시킨 등 유명 러시아 작가나 예술가들이 거쳐 간 곳이라 거리 이름의 상당수가 이들과 연관돼 있다.
시 의원인 페테르 오부크호우는 가디언에 "러시아 도시, 작가, 황제의 이름을 딴 거리가 200개가 넘는데, 그중 오데사와 실제 연관이 있는 5개만 남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개명' 움직임에 지지를 보냈다.

전쟁 후 약탈 우려 탓에 비밀 장소로 옮겨놓은 예카테리나 2세 초상화 등 오데사 미술관 내 러시아 관련 작품들의 운명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카테리나 쿨라이 미술관 관장 대행은 가디언에 "박물관이 재개관하면 컬렉션이 이전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러시아의 침공 때문에 역사적·문화적 유산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미술관의 과학 부문장인 치릴 리파토우는 가디언에 "모든 것을 철거할 필요는 없다"며 "우리는 예술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서술을 뒷받침하는 데 쓰였는지 보여주기 위해 이들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s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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