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① '무량판 대란'에 흔들리는 K-건설…무엇이 문제였나

입력 2023-08-09 14:00   수정 2023-08-09 14:22

[서미숙의 집수다] ① '무량판 대란'에 흔들리는 K-건설…무엇이 문제였나
정부, LH 이어 민간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부실시공 판명시 후폭풍 클 듯
무량판 구조 문제없지만 설계·감리·시공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문제
"부실 감리, 재하도급, 이권 카르텔 등 후진적 관행 고치는 계기 돼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그야말로 '무량판 대란'이다.
인천 검단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촉발된 무량판 구조 안전에 대한 우려가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을 넘어 과장된 표현이지만 '무량판 포비아(phobia·공포증)'로 번질 조짐이다.
아파트 건축 기술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던 'K-건설'의 현주소다.
정부의 화살은 LH 아파트 주차장을 넘어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전체, 그리고 건설업계에 뿌리 깊은 이권 카르텔을 겨냥하고 있다. 그 후폭풍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 무량판 구조가 주거동에 쓰이게 된 배경은
현재 쓰이는 아파트 등 건축물의 구조는 크게 3가지다.
보 없이 내력벽으로 슬래브(상판)를 받치는 '벽식 구조', 슬래브의 하중을 보와 기둥으로 받치는 '라멘 구조'(기둥식 구조), 그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무량판 구조다.
무량판(無樑板)은 슬래브(상판) 밑에 보(樑)가 없이(無) 기둥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다.
이중 우리나라 아파트 건축에서 일반화된 공법은 공사비가 싸고 시공이 용이한 벽식구조다.
다만 벽식구조 아파트도 지하 주차장에는 무량판 구조가 많이 쓰였다. 벽 대신 기둥을 설치해야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별도의 보 설치가 필요한 라멘 구조와 달리 같은 천장 높이에서 지하를 덜 파도 되니 공사비가 절감되는 장점도 있다.
아파트 주거동 무량판 구조의 시초는 1970년대 지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전해진다.
이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무량판 구조 기피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2000년 초 분양된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를 계기로 무량판 구조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삼성동 아이파크 모두 옛 현대산업개발(현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것으로, 현대산업개발은 당시 '신공법'으로 불리던 무량판 구조를 선도한 회사다. 삼성동 아이파크는 과거 헬기가 아파트 동에 직접 부딪히는 사고에도 안전했다.
이후 주택시장에서는 공간 구조 변경이 용이한 '가변형 벽체'를 앞세워 주상복합아파트를 중심으로 무량판 구조 설계가 인기를 끌었다.



일반 판상형 아파트에 무량판 구조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정부가 '100년 주택'으로 불리던 '장수명(長壽命) 주택' 인증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내구성·가변성·수리의 용이성 등을 평가해 공간 구조 변경과 리모델링이 용이한 라멘 구조나 무량판 구조 등을 적용하면 장수명주택으로 인증하고, 정비사업 시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용적률 인센티브를 줬다.
건설업계는 시공이 용이한 벽식 구조와 무량판 구조를 혼합한 무량판 '복합구조'를 도입했다.
세대와 세대는 벽식으로 마감하고 집 안의 일부에 내력벽, 비내력벽, 기둥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엄밀한 의미의 무량판은 아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활한 분양가 상한제는 무량판 복합구조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분양가 상한제 가점 항목에서 완전 무량판은 5%, 벽식과 무량판을 혼합한 복합 구조에는 3%의 가산점이 주면서 재건축 조합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설계는 보통 조합이 설계사무소를 통해 그려오는데, 서울을 비롯한 분양가 상한제 지역에서 일반 분양가를 높게 받기 위해 무량판 구조를 써달라는 조합이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입주가 시작된 서울시내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무량판 복합구조로 시공됐다.
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비롯해 외관이 둥근 '타워형' 아파트는 설계 문제로 지금도 판상형보다 기둥이 많은 무량판 복합구조가 널리 쓰인다.
슬래브 밑에 두께 50cm의 보가 설치되는 라멘 구조는 가장 튼튼한 구조물로 알려져 있지만, 공사비가 많이 드는 데다 층고와 배관 문제 등으로 초고층 빌딩 등에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 구조적으로 문제 없다며 붕괴?…설계·감리·시공 등 총체적 부실이 원인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삼풍백화점은 왜 무너졌을까.
일단 삼풍백화점은 상업용 건물로 주거동에 쓰인 무량판 복합구조와 다르다. 또 당시 잦은 용도변경에도 불구하고 구조 설계 변경을 하지 않았고, 설계도와 다른 엉터리 시공, 부실한 건물 유지관리 등 총체적 문제가 있었다.
지난해 1월 무량판 복합구조인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가 붕괴한 것도 전형적인 인재 사고다. 수사당국이 밝힌 붕괴 원인은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구조검토 없이 테크플레이트와 콘크리트 지지대를 설치하고, 하부 3개층 동바리를 조기 철거한 점, 콘크리트 품질·양생 부실이었다.
이번 인천 검단 LH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는 설계상에 전단보강근 시공 지시가 빠져 있거나 설계에 있는데도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점이 직접적인 붕괴 원인으로 꼽혔다.
설계 단계부터 이를 관리 감독해야 할 감리자, 설계대로 짓지 않은 시공자까지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결과물이다.
정부는 LH 아파트 무량판 주차장 전수 조사에 이어 민간아파트로 조사 대상을 확대했다. 당초 발표한 293개에서 조사 대상은 더 늘어날 전망이고 10월에 조사 결과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를 제대로 시공하면 장점이 많은 공법이지만, 벽식이나 라멘 구조에 비해 하중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어서 만약 구조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1차 타킷은 전관예우 등 LH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이다. LH 퇴직자들은 현재 국내 민간 설계·감리업체에 안 가 있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들은 전관을 무기로 LH 공사를 따내고, 친분을 이용해 엉터리 설계·감리가 이뤄지게 한 주인공이다.
이런 카르텔은 민간에도 있다. 설계·감리회사가 특정 건설사 공사를 따내기 위해선 해당 건설사 출신의 임원을 영입하는 것은 영업의 기본이다.
이번 민간 조사에서 업계가 특히 긴장하는 부분은 전단보강근이 아니라 콘크리트 강도 조사라는 말이 나온다.
작년 1월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다수의 건설사가 콘크리트 강도 조사를 샘플 조사에서 전수 조사 형태로 바꿨다.
그전까지는 레미콘 차량 10대가 현장에 들어오면 한두 대의 차량에 실린 레미콘만 샘플 조사를 했다. 이는 부실 레미콘과 부실 골재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화정 아이파크 붕괴 이후 건설사의 부실 레미콘 조사가 강화돼 같은 물량인데도 과거보다 시멘트 사용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시멘트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은 업계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 이권 카르텔 겨냥하는 정부…건설산업 '고질적 병폐' 뜯어고쳐야
전문가들은 이번 무량판 대란을 후진적 건설 관행을 손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후진적 병폐를 바로잡지 않으면 20세기에나 봐왔던 후진적인 건설 사고가 21세기에도 되풀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도급에 재하도급을 주는 현행 건설 도급구조는 공사비 빼먹기, 부실 시공, 책임 떠넘기기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건설 업역 문제 등에 가로막혀 아무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돈은 전문 구조기술사에 지불하는데, 실제 도면은 자회사의 아르바이트생, 친인척 설계사무소가 그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역시 손봐야 할 이권 카르텔이다.
이원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는 "건설현장에서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는 문제가 안되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문제인 이유가 무엇일까. 외국은 CM(건설사업관리)과 감리가 막강한 권한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대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엉터리로 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부실한 감리제도부터 제대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건설사의 현장소장 대부분은 구조 전문가가 아니고, 감리 역시 도면대로 시공했는지만 따질 뿐"이라며 "최소한 골조 공사가 끝날 때까지 구조 전문가를 현장에 상주하도록 하는 등 안전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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