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배달천국 중국, 어느 교수의 '600원짜리 노동' 보고서

입력 2023-09-09 07:05  

[특파원 시선] 배달천국 중국, 어느 교수의 '600원짜리 노동' 보고서
中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 된 배달 노동 체험기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올해 여름 11년 만에 중국 베이징에 다시 온 뒤 가장 놀란 점 중 하나는 '값싸고 빠른' 배달 문화였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는 노란색이나 파란색 헬멧을 쓴 음식 배달 기사들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식사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침 일찍이나 밤늦은 시간에도 이들은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음식을 나른다.
중국이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를 겪은 올해 여름 배달 기사들의 고생은 다른 때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땀에 전 옷을 입고 한쪽 방향 밑창이 거의 완전히 닳은 운동화를 신은 채 음식 봉투를 양손으로 옮기던 젊은 배달 기사를 보다가 자연스레 그의 건강을 걱정한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배달 노동 체험기'를 읽게 됐다. 입소문을 타고 글이 퍼지면서 중국 관영 매체들까지 주목했을 정도로 반향이 일었다.
주인공은 산둥성 린이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싱빈 교수다. 그는 작년 말 배달 플랫폼 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을 '2022년 겨울, 나는 린이에서 배달을 했다'이라는 글로 지난달 발표했다.
본업이 연구자이니 만큼 린 교수의 체험기에선 언론 기사나 전문 보고서 내용, 문학작품 구절도 간간이 등장했다.
덕분에 개인적인 노동 경험을 넘어 중국 배달 노동자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엿볼 수 있는 글이 됐다.
그의 체험기를 소개해본다.



◇ "쉬는 날 없이 하루 종일 일하면 120만원…도로 달리며 목숨 걸어야"
배달 시장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메이퇀(美團)이나 어러머(ele.me)를 비롯한 배달 플랫폼의 문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정도 일해서 얼마나 벌지의 문제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린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배달 기사는 몇 등급으로 나뉜다.
맨 윗 등급인 '전업 라이더'는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한다. 건당 3∼4위안(약 550∼730원)인 주문이 한꺼번에 5∼6건씩 '정리된' 채 들어와서 상대적으로 일은 수월하다. 운행 거리는 3㎞를 넘지 않고, 배달 음식을 빌딩 로비 등에 놔두면 돼 배달 시간도 짧다.
배달 기사 중 그나마 나은 처지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휴가 내기가 어렵다. 매월 나흘을 쉴 수 있는데, 쉬려면 일주일 전에 쉴 날짜를 회사에 신고해야 한다.
강풍이 불거나 눈비가 내려도 음식은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배달이 늦는 것 자체로 불이익을 받지는 않지만, 고객에게서 나쁜 평가를 받으면 벌금 500위안(약 9만원)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인구 1천만명이 넘는 린이시에서 이렇게 하루 12∼14시간씩, 한 달에 26∼28일을 일하면 평균 6천위안(약 109만원)을 벌 수 있다.
린 교수는 "특히 절박한 경우라면 (한 달에) 8천위안(약 145만원)도 번다"며 "다만 이는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시속 100㎞로 몰면서 역주행을 하거나 신호를 무시한 채 목숨을 내놓고 바꿔 가는 돈"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아래 등급인 '파트타임 라이더'는 전업 라이더와 달리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조건이지만, 이 일로 먹고 살 생각이라면 상황은 훨씬 열악하다.
배송 단가가 30% 낮은데도 전업 라이더가 남겨둔 콜만 처리할 수 있다.
외지거나 먼 동네,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짜리 건물 등이 이들의 몫이 된다. 더 위험한데 버는 돈은 훨씬 적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을 일하면 7천위안(약 127만원)을 벌기도 했다.
2021년 기준 중국의 대학 졸업자 평균 임금인 5천833위안(약 110만원)보다는 많지만, 배달 일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선진국 못지않은 높은 집값과 물가 때문에 살기가 쉽지 않다.
린 교수는 따로 직업이 있는 사람이므로 파트타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달원으로 살았던 한 달, 그는 2천여건의 주문을 소화했고 매일 오토바이로 210㎞를 이동했다. 하루에 3만2천보씩을 걷고 계단 110층을 올랐다.
배달 단가 3.5위안(약 635원)에 건당 이동 거리(5㎞)와 배달 시간(20분)을 계산하면 한 시간에 10.5위안(약 1천900원)을 번 셈이다. 시간당 수입은 아무리 노력해도 20위안(약 3천600원)을 넘길 수 없었다.



◇ "모욕과 무시는 일상"…가난한 고객들의 감사 인사에 힘 얻기도
린 교수는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배달 기사라는 이 '신분'이 대체 어떤 처지인가라는 점"이라며 "육체적인 고통도 있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모욕"이라고 썼다.
음식을 파는 상인이든 배달을 받는 고객이든 건물 경비원이든 배달원을 존중하는 태도로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허름해진 배달 복장을 한 채 밤늦게 자기 집에 들어가던 중 경비원이 "배달원이 이런 집에 살 수 있는 건가"라며 쫓아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린 교수는 "상당수 고객이 나를 보는 눈빛은 거지를 보는 것 같았고, 사람의 껍질을 쓴 축생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마음씨 좋은 고객을 만난 순간은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 그는 한 달 동안 2천여회 음식을 배달하면서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세 번 받아봤다고 했다.
이주민 마을에 사는 한 여성은 밤늦게 아이가 먹고 싶어 한 훈둔(완탕)을 배달해준 린 교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한 뒤 2위안(약 363원)을 추가로 줬고, 다른 외진 마을에 살던 어느 부부는 그가 길을 못 찾을까 봐 손전등을 들고 마을 초입까지 배웅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노부부는 린 교수가 국물을 약간 쏟아 새 음식을 보내주자 음식값을 그대로 돌려줬다고 한다.
일을 하며 만난 배달 기사 중에는 60대가 넘은 사람도 있었다. 한 달에 3천∼4천위안(약 54만∼72만원)을 벌지만 "집에는 아이와 병상에 누운 노인이 있고, 은행이 보내온 주택 대출 상환 문자메시지가 있어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고 린 교수는 썼다.



◇ 하청·재하청으로 고용되는 기사들…"다쳐도 모두 나 몰라라"
배달 기사들을 옥죄는 것은 플랫폼 기업의 '보이지 않는' 통제 구조다. 생명이나 건강과 관련한 응당 신경 써야 할 영역에선 손을 놓는데, 회사의 이익과 관련된 영역에선 냉정하기 그지없다고 그는 비판한다.
중국의 배달 플랫폼 업체들을 살펴본 린 교수는 모든 도시에서 본사가 지역별 사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지역 사업자는 자기 몫을 다시 재하청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KFC·맥도날드 등 배달 기사들과 정식 노동계약을 체결하고 사회보험도 제대로 가입하는 기업과 중국 배달 플랫폼 업체의 노동자들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린 교수에 따르면 중국 플랫폼 업체의 배달 기사는 매일 사회보험료 3위안(약 544원)을 내고, 이 중 60%는 회사가 떼어가고 40%만 보험회사에 간다.
배달 기사가 죽거나 다치면 보험금은 최고 6천위안(약 108만원)까지 나오는데, 치료비가 부족하면 사업자가 추가로 감당해줘야 한다. 이 사업자가 도망가면 다친 노동자는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린 교수는 "이런 중대한 사상 사고는 지역별로 매월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배달 기사의 돌연사도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플랫폼 업체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법적으로도 무관해 소송도 무의미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플랫폼 기업이 고객의 불만이나 시스템상 문제를 배달 기사 개인에게 '벌금' 형태로 고스란히 전가하는 점도 문제다.
그는 식당 잘못으로 음식이 늦게 나온 어느 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고객은 괜찮다며 '배송 완료' 처리를 해줬는데 이튿날 린 교수에겐 벌금 200위안이 부과됐다. 통화 녹음을 증거로 내밀어도 소용없었다.



◇ "기사·음식점 옥죄며 배 불리는 업체들…'품위 있는 삶' 누가 막나"
린 교수가 일한 업체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유명 배달 플랫폼이다. 재무제표상 작년 한 해 손실은 67억위안(약 1조2천억원)이었다. 1천155억위안(약 20조9천억원)의 손실을 본 2018년보다는 나아졌지만, 코로나19로 주문이 폭증한 것을 생각하면 숫자로 나타나는 기업 상황은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층 배달 기사인 린 교수로선 놀라운 일이었다. 이 업체는 주문 1건을 받으면 음식점으로부터 상품 가격의 30%를 운송 비용으로 떼고, 고객으로부터 ㎞당 0.5위안씩의 돈을 받아 가는 곳이다. 예를 들어 20위안짜리 점심 식사가 배송되면, 음식점 주인은 14위안을, 배송 기사는 3위안을 받고, 플랫폼 업체는 거리 비용까지 더해 5위안을 가져간다.
재무제표를 다시 본 린 교수는 해마다 300억위안(약 5조4천억원) 넘는 돈이 행정 지출과 연구개발비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노동자 대부분이 아웃소싱 상태인 데다 플랫폼이 이미 구축돼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지출 구조가 부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배달 기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도가 높은 일을 하면서도 가장 낮은 비율의 수입을 얻고, 음식점은 이렇게 과중한 수수료를 버티지 못해 하나둘씩 떠나고 있으며, 업체 대주주는 해외 호화 주택과 요트로 자산을 옮겨놓고 있다"며 "이런 재무제표 수치가 보여주는 것과는 맞지 않는다"고 썼다.
린 교수는 "배달 플랫폼 회사들의 관리 시스템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훨씬 정밀하고 정확해졌다"면서 "그래서 딱 알맞은 만큼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딱 알맞은 만큼 배달 기사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사들이 심신을 회복하거나 돈을 모으지 못하도록, 당나귀처럼 이 마구간에 단단히 매여있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을 살지 못하게 막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덧붙였다.
xi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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