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 '세계경찰' 포기하나…하원의장 축출 뒤 정체성 위기

입력 2023-10-06 12:04  

미 공화당 '세계경찰' 포기하나…하원의장 축출 뒤 정체성 위기
소수 강경파 득세에 우크라 지원안 이제 '협상 칩'
"리트머스 시험대 올랐다"…자국 우선주의냐 글로벌 민주주의 수호냐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 보수야당 공화당이 초유의 하원의장 축출로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글로벌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며 미국이 세계경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보수의 주축이 자국 우선주의를 훨씬 중시하는 포퓰리스트 정파로 기울 수 있다는 관측이다.
케빈 매카시(공화) 미국 연방 하원의장이 지난 3일(현지시간) 전격 해임된 사상 초유의 사건에는 이 같은 당내 위기가 고스란히 투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매카시 해임안은 하원 전체 435석 가운데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가결됐다.
이는 221석 대 212석으로 공화당이 근소한 우위인 하원에서 법안 가·부결을 좌우할 수 있는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의 반란이었다.
공화당 내 8명이 찬성표를 던져 침묵 속에 전적으로 동조한 민주당을 이용해 모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 빌린 칼로 남을 죽임)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들은 매카시 의장이 정부 폐쇄(셧다운)를 막기 위해 여당과 함께 처리한 임시예산에 불만을 품고 해임안을 가결했다.
미국은 연방 정부가 부채총액 상한을 넘으면 극소수 필수 업무만 남기고 가동을 대거 중단한다.
의회의 부채한도 증액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인 상황에서 여야의 극한대치 속에 일단 정부폐쇄만 막자는 취지로 45일짜리 미봉책이 합의됐다.
우크라이나 지원이 빠지는 등 임시예산이 대폭 축소됐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이민자 통제 강화 방안이 들어가야 한다며 반발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연방정부 셧다운 위험을 볼모로 잡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 강경파의 성향이다.
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들 인사는 기본적으로 자국 우선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슬로건으로 표방한 이 같은 입장은 대외정책에서 일부 고립주의 성향을 띤다.
러시아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것보다 그 재원을 국내 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같은 자국 우선주의가 일부 친트럼프 강경파를 넘어 공화당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익 일부의 메시지가 공화당원 사이에서 탄력을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5일 전했다.
공화당 주류는 그간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찬성해 왔으나 변방에 이탈자가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하원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지원용 국방예산 3억 달러를 별도 법안으로 상정해 311명의 찬성표로 가결했다.
당시 법안은 처리됐지만 당시 공화당 의원의 과반인 117명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심각한 현상으로 주목됐다.
우크라이나 지지 의견이 4분의 3에 이르는 공화당 상원의원들 사이에서도 하원의 기류에 신경을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임시예산 편성 때 자신들의 안 대신 우크라이나 지원이 빠진 매카시 의장이 들고 온 안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이 미국 여야 정쟁 과정에서 '협상 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이크 로저스(공화) 하원 군사위원장은 "소수(강경파)가 우리 기반을 흔들어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지하고 국경 보안에 찬성할 수 없다면 진보주의자라는 식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이 같은 상황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향후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싼 결정은 공화당이 표방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세계 경찰의 입지를 지킬지, 자국 이익을 위해 독재자로서 전쟁범죄자 낙인까지 찍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릴지 갈림길에 선 셈이다.
공화당은 대규모 국방예산을 토대로 인권, 법치, 경제적 자유주의, 권력분립, 주권존중 등 미국이 주창한 가치를 전 세계에서 수호한다는 신념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자기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NYT는 "우크라이나 지원이 우파에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최근 하원에서 펼쳐진 드라마를 보면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겠다는 공화당의 의지가 급감했다는 점이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의 시험은 당장 차기 하원의장 선출로 시작된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찬성하는 스티브 스칼리스 하원 원내대표와 강한 반대를 표명해온 짐 조던 법사위원장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상황이 "미국에 나쁘고 우크라이나에는 더 나쁘다"고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하원이 결국 우크라이나에 돈을 내주기는 할 것이지만 거대 예산안이 편성되는 올해 말이나 돼야 할 것"이라며 "불필요한 지체 때문에 미국의 신용이 손상되고 푸틴은 고무되며 우크라이나인들은 죽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시사지 뉴스위크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인들의 감정과 이성을 사로잡기 위한 싸움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지난 4일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인 63%는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지지했다.
그 비율을 보면 민주당은 77%로 변화가 미미했으나 공화당은 50%로 작년 7월보다 18%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반적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단기적인 우회 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국무부의 해외 군사 재정지원 프로그램이나 국방부 예산 전용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추가로 군사 지원을 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jangj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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