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중동 '봄바람' 불때마다 급변 사태

입력 2023-10-12 06:00  

[이·팔 전쟁] 중동 '봄바람' 불때마다 급변 사태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 화해 캠프데이비드협정 이후 사다트 암살
1993년 이스라엘-PLO 오슬로협정 뒤 라빈 피살
이스라엘-사우디 국교 수립 추진 중 하마스 대규모 기습 사태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잉태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을 근원으로 하는 중동 분쟁은 종종 평화협상으로 역사적 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이같은 '봄바람'이 불 때마다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극단세력은 급변사태를 벌였고 모처럼 맞은 중동의 해빙 무드가 제동이 걸리는 역사가 반복됐다.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맞붙은 4번째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의 선봉은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였다.
이집트는 이 전쟁으로 1967년 전쟁에서 잃은 수에즈 운하를 이스라엘에서 회복하는 성과를 거뒀고 사다트는 아랍권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빈부 격차와 극심한 민생고에 시달렸으며 과도한 전비 지출로 국가 재정이 어려움을 겪었다.

사다트는 이를 해결하려고 이스라엘, 서방과 관계 개선에 눈을 돌렸으나 기대만큼 이집트의 경제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으며 빵 보조금 폐지 등으로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등 민심은 악화일로였다.
사다트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랍권 전체가 반대하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하기로 전격 결단한다.
1977년 11월19일 카이로발 비행기를 탄 사다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했다. 이튿날엔 아랍권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평화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불과 4년전 군대를 동원해 공격을 명령했던 적장이 평화의 비둘기가 돼 날아온 셈이다.
양국을 중재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듬해 9월 사다트와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데이비드로 불러 12일간 협상 끝에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는다.
협상의 최대 걸림돌은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사다트는 팔레스타인 주권국가 수립을 요구했으나 최종 합의서엔 '자치정부 수립'에 그쳤다. 서안, 가자지구의 반환도 무산됐다.
서방은 환호했고 이집트는 시나이반도를 무혈 반환받는 실리를 챙겼지만 사다트는 아랍의 영웅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면서 공적이 됐다.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에 넘기면서 이득을 챙겼다는 비판이 아랍권에서 쇄도했다.
1981년 10월6일 자신을 영웅으로 부상케 한 욤키푸르 전쟁을 기념하는 군사 행진 도중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 지하드 소속 육군장교 할리드 알이슬람불리에 의해 암살됐다.
캠프데이비드협정 넉 달 뒤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중동 정세가 급격히 경색됐고 협정의 주인공 카터의 재선 실패, 이란-이라크 전쟁, 사다트 암살이 이어지면서 역사적 협정도 힘을 잃게 됐다.
중동의 봄은 캠프데이비드 협정 뒤 꼭 15년이 흐른 1993년 9월 다시 찾아온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오슬로 협정에 합의한 것이다.
양측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중단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철수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은 캠프데이비드 협정에서 합의된 자치정부를 비로소 수립하게 됐다.
하지만 이 협정도 이슬람주의 세력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양측 강경파의 테러가 이어졌고 협정의 주역인 라빈이 1995년 팔레스타인과 화해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스라엘 극우파에 암살당했다.
라빈의 피살 뒤 1996년 들어선 강경 우파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았으며 이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협정을 파기, 협정은 유명무실해졌다.
캠프데이비드 협정의 사다트와 오슬로 협정의 라빈 모두 평화협정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자국 극단주의자에게 암살되는 비극을 맞았다.

7일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대규모 이스라엘 기습도 중동에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운데 발발한 급변사태다.
올해 3월 중국의 중재로 중동의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해빙기에 접어들었고 미국의 주선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평화협상이 진전되고 있는 터였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의 성패는 이번에도 역시 '팔레스타인'이다.
사우디의 기본 원칙은 2002년 자신이 천명한 '아랍 이니셔티브'다. 아랍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국가 인정으로 이스라엘로선 수용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어서 양국의 국교 수립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하지만 거듭된 중동 평화협정 실패 속에 무력 투쟁을 독립국가 수립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이슬람주의 조직 하마스로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움직임에 반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을 수 있다.
양국이 수교하게 되면 팔레스타인은 자칫 '뒷전'이 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두 번의 중동 평화협정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이번 급변사태에 계산이 매우 복잡해진 건 사우디다.
가자지구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선언한 이스라엘과 수교는 '팔레스타인 대의'를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는 아랍 이슬람권의 지도국의 위상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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