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아이슬란드 '여성 파업'과 한국의 저출산

입력 2023-10-26 16:17  

[논&설] 아이슬란드 '여성 파업'과 한국의 저출산

(서울=연합뉴스) 최재석 논설위원 = 1975년 10월 24일 북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여성들이 성평등을 요구하며 '24시간 파업'을 했다. 전체 여성의 90%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은 하루 동안 일하고 요리하고 아이 돌보는 것을 거부했다. 은행과 공장, 일부 상점은 문을 닫아야 했고 학교와 보육원도 아이들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많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하러 가야 했다. 이 파업은 아이슬란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듬해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법이 제정됐다. 1980년에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이 나라에서 탄생했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아이슬란드에선 대통령이 상징적인 국가원수 역할을 한다.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정치 참여 역사가 길다. 2015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여성들은 1915년에 참정권을 얻었다. 세계 최초인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 핀란드, 노르웨이 다음으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됐다. 그러나 그 후 60년간 여성 의원은 9명에 그쳤다. 여성 파업이 있었던 1975년에는 여성 의원이 전체 의석의 5%인 3명에 불과했다. 당시 다른 북유럽 국가의 여성의원 비율이 16∼23%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았고, 이런 상황이 많은 여성에게 좌절감을 안겼다고 BBC는 분석했다. 현재는 총리가 여성이고 내각을 구성하는 12명 중 6명이 여성 각료인 나라로 변했다. 의회 의석도 거의 절반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올해 또 여성 파업이 일어났다. 1975년의 첫 여성 파업 48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남녀 임금 격차 해소와 성차별적 폭력 근절을 요구하는 24시간 파업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뉴스 진행자들이 전하는 파업 소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대중교통은 운행이 지연됐고, 병원에도 출근하는 직원들이 드물었고 호텔 방들도 제대로 청소가 이뤄지지 않았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동참했다.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이라서 파업에 동참한 것이 아니며 정부 수반인 총리로서 이번 파업에 연대와 지지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린 아직 완전한 성평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인구 38만명의 아이슬란드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로 꼽힌다. 다보스포럼으로 더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평등 지수'에서 14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국가다. 임금과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 남성의 권익을 1로 봤을 때 여성의 권익 수준을 말하는 지수가 올해는 0.912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146개국 중 지수가 0.9를 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가 유일했다. 한국은 이 조사에서 105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한국은 성평등 문제와 관련된 국제적 조사에서 여전히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남녀임금 격차 조사에서도 그렇다. 2021년 기준 '국가별 성별 임금 격차' 조사에서 39개국 중 가장 큰 격차인 31.1%로 나타났다. 남성이 직장에서 100만원을 벌 때 여성은 70만원도 못 번다는 얘기다. 한국은 OECD 가입 원년인 1996년부터 내리 이 조사에서 '부끄러운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남녀 고용률 통계에서도 한국의 올 2분기 고용률 남녀 차이가 15.56%포인트로 나타났는데 이는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8번째로 큰 수준이다. OECD 평균 남녀 고용률 차이인 13.85%포인트보다도 크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노동시장 내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깊이 연구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받았다. 그의 수상은 초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한 바가 컸다. 그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한국의 기업문화가 세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세대와 남성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올해 8월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8%나 준 1만8천984명으로 집계됐다. 8월 기준 출생아가 2만명 아래로 떨어진 건 처음이라고 한다. 여성에게 고용과 급여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결혼과 출산은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화가 확산하고 성별 임금 격차가 줄면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 소멸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bond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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