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일서 반세기만에 회고전 이우환 "야생으로 돌아가자"

입력 2023-10-31 09:45  

[인터뷰] 독일서 반세기만에 회고전 이우환 "야생으로 돌아가자"
"인간의 뿌리는 자연…전쟁·AI문제, 야생에 해법"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세계무대를 향한 도약대가 됐던 독일에서 반세기 만에 역대 최대 회고전을 연 이우환 작가가 "야생으로 돌아가자"는 화두를 던졌다.


이 작가는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등 잇따른 전쟁에 대해 "너무 불안하고 또 폭력적이고 장래를 생각하기가 힘든 시점에 와 있다. 이는 인간의 문명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연이 갖다준 게 아니라 인간이 서로 잘났다면서 잘해보겠다고 한 것이 거꾸로 큰 재앙이 돼서 돌아오고 있는 상태"라면서 "전쟁 못지않게 인공지능(AI)이나 정보 과잉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작가는 "인간의 뿌리는 정보에 있는 게 아니고 자연에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좀 더 인간의 현실적이고,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것을 환기하면서 앞을 바라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4월 28일까지 열리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국립현대미술관인 함부르거 반호프 초청 특별회고전에서 60년간의 창작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57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회고전으로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봄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14년 만에 열린 개인전에서도 10점만 선보였었다.
이 작가는 1974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단체전을 하면서 본격 세계 무대에 소개됐다. 이후 2000년까지 유럽, 특히 독일에서 가장 자주 전시회를 했다. 독일이 그를 세계로 나아가게 지원한 셈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1961년 일본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이 작가는 68혁명이 일어났던 1968년부터 자연과 산업적 요소들을 정확하게 공간적으로 배치한 '관계항(Relatum)'이라고 불리는 조각 설치작품을 구현해왔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이 작가 작품의 낙찰 총액은 쿠사마 야요이(276억7천만원)에 이어 2위로 254억5천만원에 달한다.

함부르거 반호프가 소장한 미국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미술가 도날드 저드나 조각가 칼 안드레, 댄 플래빈의 작품이 객체로서 작품 자체의 원료나 형태에 집중하는 반면, 이 작가의 작품은 자연과 산업적 요소들과 공간 또는 관람객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 작가의 예술은 사물이 배치된 공간과 나와의 관계를 세워주고 이에 따라 세계를 열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하는 예술은 '이게 무슨 뜻입니까'라든지 '무슨 정보입니까'가 아니라 와서 보고 느끼고, 자기가 알지 못하지만 떨림이 일어나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게 제일 첫 단계에요. '이것입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하는 것 이전에 느끼는 차원에서 설 수 있는 장을 만들자 그런 소리입니다"
그는 "전쟁이나 AI 등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으로서 인간이 야생으로 돌아가자든지 자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많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가는 전시 개막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미국 미니멀리즘과 자신의 미니멀리즘간 차이에 대해 "내가 작업의 초점은 사물 그 자체보다는 전시된 사물이 외부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데에 있다"면서 "관계에 관한 것으로, 텅 빈 것과 다른 것들을 여는 공간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일본에서 1960∼1970년대 초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미술 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다.
그는 이후 지난 14일 별세한 묘법 연작으로 유명한 박서보 화백과 함께 1970년대 한국에서 단색화 운동을 이끈 대표 인물 중 하나다. 단색화 운동은 서양의 모더니즘을 받아들이되 이를 동양의 정신과 섞어 우리만의 새로운 현대미술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가는 박 화백에 대해 "한국에서 그런 거대한 존재는 찾기가 힘들 것"이라며 "모든 것을 합쳐도 전후에 그만한 일을 한 사람은 없고, 그 존재는 길이 우리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색화는 세계에서 지금 누구든지 알아주는 그런 운동이고, 유파라는 게 그분의 존재를 잘 증명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리판 위 돌을 놓아, 유리판에 금이 가게 한 1969년의 관계항 작품을 다시 재연한 작품을 비롯해 17점의 조각 설치작품이 선보였다.
"68혁명이 일어났던 1968년 당시 돌로 산업사회의 산물인 유리판을 깨뜨리는 형태의 작품을 설치한 데는 베트남 전쟁과 학생운동, 식민주의 제국주의 반대 등의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당시에 유리를 깨뜨린다는 행동은 과거를 파괴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조각이 시적이거나 아름다움과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고전에서는 렘브란트의 벨벳 베레모를 쓴 자화상(1634)과 함께 이 작가의 조각 설치 작품 '관계항-좁은 하늘길'이 특별히 선보였다. 당초 원주인인 회화미술관이 대여를 꺼렸지만, 이 작가가 "렘브란트의 자화상 앞에서 내 영혼의 가장 깊숙한 부분이 전율한다"고 끝나는 시를 보내 허가를 얻었다는 후문이다.
이번 회고전을 기획한 샘 바르다우일 함부르거 반호프 관장은 "이 작가는 전 세계 미니멀리즘 유파와 동시대에 펼쳐진 일본의 모노하 운동과 한국의 단색화 운동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이를 통해 서유럽 예술의 초상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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