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우리만 가도 되나" 안도와 절망 뒤섞인 라파 국경

입력 2023-11-02 11:31   수정 2023-11-02 15:31

[이·팔 전쟁] "우리만 가도 되나" 안도와 절망 뒤섞인 라파 국경
외국 국적자만 출국 허용…이산가족 속출
희망자 수천명 중 300여명만 빠져나와…추가 출국 대상자 등 '깜깜'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외국 국적 소지자의 출국이 허용됨에 따라 1일(현지시간) 유일한 출국 관문인 라파 국경 검문소에서는 탈출에 성공한 이들과 발이 묶인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집트로 빠져나온 수백 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출국 가능 인원 명단에서 빠진 수천 명은 초조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가족 중 일부만 출국이 가능한 이들은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날 외국인 여권을 소지한 가자지구 주민 수백 명이 필사적으로 가자지구를 벗어나려 라파 국경 검문소의 검은 철문 주위로 몰려들었다.
현장에는 취재진의 TV 카메라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배낭과 트렁크 가방 등을 든 이들은 서로 밀고 밀리면서 출국 심사를 거쳐 이집트에 무사히 입국을 마치자 이제 목숨을 건지게 됐다는 기쁨을 나타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집트로 출국에 성공한 외국 여권 소지자는 모두 335명으로 대부분은 이중 국적을 가진 팔레스타인이다.
요르단 국적자인 라니아 후세인은 "우리는 신에 의지해서 우리가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약 400명으로 추산되는 미국 국적자를 비롯해 가자지구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외국 국적자 수천 명이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글 스프레드시트 파일로 널리 퍼진 출국 가능 인원 명단에는 수백 명밖에 없어서 의문이 커진다고 AP는 전했다.
이 명단에는 몇몇 유럽 국가들과 호주·일본·인도네시아 국적자 등이 있고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은 없지만, 미국 국무부는 이날 미국 시민권자 수 명이 빠져나왔다고 확인했다.
나머지 외국 국적자들의 출국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느 나라 국민들이 나갈 수 있을지, 출국 순서는 어떻게 정해질지 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날 가자지구 내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이 완전히 두절돼 각국 대사관과 연락마저 끊기면서 출국을 기다리는 이들은 불안과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아실 슈랍은 "가자지구를 떠날 것으로 기대하며 오늘 여기 이집트 국경에 왔는데 통신 장애 때문에 캐나다 대사관과 연락이 안 됐다"며 "여기를 떠나 우리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한탄했다.
미국 국적을 가진 76세의 의사 함단 아부 스페이탄은 "내가 할 일은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가족 중 일부가 외국 여권이 없는 많은 이들이 부모·자식 등을 놔두고 떠나면서 이산가족이 됐다.
가족 중 유일한 불가리아 국적자인 장녀 라마 엘딘(30)을 떠나보낸 나디아 살라(53)는 뉴욕타임스(NYT) 기자와 통화에서 "매우 힘들지만, 딸은 안전해지기 위해 가야 한다"고 눈물을 참으면서 말했다.
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진 하이탐 슈랍(54)의 경우 그와 아내, 세 아들은 출국에 성공했지만, 딸 다야나(23)만은 최근 결혼한 남편이 외국 국적이 없어 나오지 못했다. 슈랍은 NYT에 "딸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저 계속 울기만 한다"고 전했다.
몇몇 외국 국적자들은 라파 검문소에 도착해서야 가족들이 명단에 없는 것을 알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호주에서 살던 압달라 다하란(76)은 몇 년 전 고향인 가자지구로 돌아와 팔레스타인 여성과 결혼했다.

전쟁이 터지고 호주 정부는 부부가 함께 빠져나올 수 있도록 아내에게 긴급 비자를 발급해주기로 했지만, 이날 라파 검문소에 도착해보니 아내의 이름이 명단에 없었다.
다하란은 항의도 하고 애걸도 해봤으나, 검문소 관리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아내가 심지어 '그냥 가라. 그다음에 어떻게 되나 보자'고 했지만, 자신은 '당신을 놔두고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면서 "아내를 놔두고 갈 수는 없다.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jh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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