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죄책감에 親팔레스타인 시위 억압 독일…"차별" 비판

입력 2023-11-11 12:41   수정 2023-11-13 16:14

홀로코스트 죄책감에 親팔레스타인 시위 억압 독일…"차별" 비판
유대인·이스라엘인의 공습 항의시위도 금지…"표현의 자유 침해" 반발도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지만, 홀로코스트라는 '원죄'를 안고 있는 독일은 이를 반유대주의로 간주해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런 독일에 역사적 죄책감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0일(현지시간) 조명했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민간인 학살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일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엄격하게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면서 인권 침해 우려가 일고 있다.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에 대한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특히 독일에서 가장 격렬하다. 독일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속죄로써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베를린의 경우 경찰이 공습으로 숨진 아동들을 추모하는 한 어린이의 1인 시위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의 절반 이상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베를린 경찰은 "집회가 혐오 선동, 반(反)유대주의적 발언, 폭력 미화·선동으로 이어질 임박한 위험성"이 있어 금지했다고 설명했다. 또 허가된 집회에서도 "전쟁을 멈춰라"나 "팔레스타인에 자유를"과 같은 구호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함부르크 당국도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금지하거나 시위에서 치켜들 수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 숫자를 제한했다.
이런 제한을 옹호하는 독일인들은 독일이 이스라엘 외의 주제에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이나 나치 지지 구호는 불법이다.
펠릭스 클라인 독일 총리실 반유대주의 특임관은 "독일 내 합의는 우리가 가진 위대한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라며 "반유대주의는 어디에서든 나쁘지만, (독일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없는 다른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랍계 이민들은 물론 많은 진보적인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인들마저 이런 제한이 표현의 자유 침해일 뿐 아니라 차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여년 간 베를린에서 살아온 팔레스타인 출신의 한 소아과 의사는 그간 독일을 집처럼 편안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가자지구 공습으로 친척 19명이 숨졌다는 그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고통에 항의하는 시위가 제한되자 팔레스타인인에 적대적으로 흐르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특히 자신이 앞서 러시아의 폭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병원을 지원하는 시위에 참가했을 때 환영받은 것과 최근의 상황이 대조돼 고통스럽다며 "차별받고, '2등 시민'이 돼 정신적 충격을 받는 느낌"이라고 NYT에 토로했다.
게다가 진보적 유대인 단체인 '유대인의 목소리'의 시위가 금지되는 등 유대인·이스라엘인들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도 취소되고 있다.
지난 달 베를린 경찰은 "유대인이자 이스라엘인으로서 말한다,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중단하라"고 쓴 포스터를 든 한 여성에게 포스터를 내리라고 지시했다가 불응하자 체포하기도 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참가자들은 시위가 부당하게 반유대주의와 동일시되고 있다고 항변했다.
10년 전 독일에 온 시리아 난민 출신의 여성 와파 무스타파는 "이런 말을 매번 해야 한다니 바보 같지만, 우리는 유대인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민으로 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닌 태생부터 독일인이었던 이들이 과거 나치에 동조하는 표현을 했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은 반면, 아랍계 등 이민자들에만 반유대주의 낙인을 찍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독일 언론들은 이민자들이 반유대주의를 수입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반유대주의 공격 사례의 대부분은 이민자가 아닌 극우 세력의 소행으로 지난해에는 그 비중이 84%에 이르렀다고 NYT는 지적했다.
100명이 넘는 유대인 작가·예술가·학자들은 독일 당국의 조치에 항의하는 성명을 내고 "만약 이런 조치가 독일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속죄하기 위한 시도라면, 그 결과는 (오히려) 그것을 되풀이할 위험성"이라고 경고했다.
성명에 참여한 소설가 토머 도탄 드라이푸스는 "독일은 반유대주의를 이민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이 때문에 독일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반유대주의적 발언·시위보다 훨씬 위험한 자생적 반유대주의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jh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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