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키신저의 '현실정치'와 한반도…세력균형 속 힘의 과시

입력 2023-12-04 15:37  

[논&설] 키신저의 '현실정치'와 한반도…세력균형 속 힘의 과시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1976년 8월18일 저녁(미국 현지시간) 백악관 상황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주재로 윌리엄 클레멘츠 국방차관, 제임스 할러웨이 해군 대장, 윌리엄 스미스 공군 중장, 윌리엄 하일랜드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워싱턴 특별대책반 회의가 열렸다.

키신저 : 중요한 것은 북한이 두 명의 미군을 때려죽인 데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B5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다시 전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금 최적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소?
스미스: 72시간 이내에 작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키신저 : 빠를수록 좋습니다.
클레멘츠: 실제 폭탄을 투하하나요?
키신저: 작전계획의 일부라면 그렇게 하세요.
클레멘츠: 작전계획의 일부로 넣을 수 있습니다.
키신저: 북한에 좋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워싱턴 특별대책반 회의록/미국 국무부 사료)

죽의 장막을 열어젖히고 데탕트를 이끈 '외교의 전설' 키신저이지만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전쟁을 불사할 정도로 냉혹한 전사의 면모를 보였다. 레드라인을 넘어서면 과감히 무력을 써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굴복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벌목작업을 지휘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 피살되는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나자 키신저는 전면전까지 각오한 대응 옵션을 주문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군 막사와 시설을 폭격하는 것을 비롯한 고강도 무력보복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이를 제지했고, 결국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가 출격한 가운데 문제의 미루나무를 벌목하는 '폴 번연 작전'을 수행하는데 그쳤다. 북한을 향한 키신저의 강경한 태도는 그로부터 7년을 거슬러 1969년 4월 미군 정찰기 EC-121기가 북한에 의해 격추된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몇 가지 외교적·군사적 옵션과 실행계획을 제시했으나 고강도 무력보복을 원하던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는 마뜩잖았다. 최소 북한의 해안 봉쇄나 북한 선박의 나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당시 얼 휠러 합참의장은 히로시마 원폭 2.5배 위력의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 발사 계획을 보고했고, 키신저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전술 핵사용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 닉슨은 막판에 이를 철회하고 항모전단을 보내 경고하는 선에 머물렀다. 키신저는 나중에 미국의 대응이 "유약하고, 우유부단하며, 조직적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키신저가 북한에 강경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시 중공·소련과의 세력균형을 저해하지 않는 선이었다. 그가 내건 '현실정치'(Realpolitik)의 핵심도 결국 세력균형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한반도 문제를 다뤄가는 과정에서 늘 강대국과의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중국과 소련이 남한을 각각 승인하는 '교차승인' 구상을 내놓으며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제안한 것이 단적인 예다. 1985년 11월 중국 국가주석 덩샤오핑을 만나 남북한 양자회담과 함께 남북미중 4자회담을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반도 핵 문제에는 어땠을까. 한국이 1970년대 독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는데 이를 배후에서 좌초시킨 주역이 바로 키신저다. 박정희 정부는 1975년 프랑스로부터 핵 재처리 기술과 시설을 도입하려고 했다. 강대국이 주도하는 비확산 질서를 깨뜨리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본 키신저는 다각도로 한국의 재처리 기술 포기를 압박했다. 프랑스 정부에는 한국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을 종용했고, 한국에 캔두형 중수로를 판매하려는 캐나다 정부에는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캐나다 정부가 우리에게 프랑스와 한 재처리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면 중수로를 공급할 수 없다고 통보하자 박정희 정부는 손을 들었다. 북한 핵의 경우 키신저는 주변 강대국, 특히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는 6자회담 구도가 현실적 해법이라고 봤다. 1994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키신저는 한때 공중폭격을 통해서라도 북한의 핵 능력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나 이는 워싱턴의 전반적 기류상 너무 위험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후 평가가 양극단으로 갈리는 키신저이지만 국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도 무시하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였음은 분명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4분의 1이 넘는 12명의 대통령을 자문했다. 지금 미국의 외교도 키신저의 이런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 문제 역시 큰 틀에서는 키신저가 중시했던 세력균형과 패권유지의 관점에서 때로는 외교로, 때로는 힘으로 해결하려는 속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키신저의 말을 경청해온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2기가 출범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해야 할 시점이다.
r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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