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보조금 중단 엄포에도…"물가폭등 못살겠다" 아르헨 反정부 시위

입력 2023-12-21 11:45  

[르포] 보조금 중단 엄포에도…"물가폭등 못살겠다" 아르헨 反정부 시위
밀레이 취임 10일 만에 거리로 나선 시민들…사회단체들 첫 대규모 도심 집회
밀레이 정부 경제 조치 발표에 반발…수도 도심 5월 광장에 헌병도 배치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수천 명의 아르헨티나 시민들이 20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반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밀레이 대통령이 지난 10일 취임식을 갖고 임기를 시작한 지 열흘 만으로, 그의 취임 이후 열린 첫 집회였다.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 후 발표한 공공지출 삭감 등 일련의 경제조치로 물가는 지난 일주일간 대부분의 품목에서 100% 이상 폭등했고, 내년 1월부터 정부 보조금이 삭감되는 교통비는 10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여기에 공공사업 중단과 정부 부처 축소로 인해 대규모의 해고가 예정돼 있다.
살인적 물가와 정부 재정 개편에 반대하는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밀레이 정부가 사회보조금 지급 중단 카드를 꺼내들며 집회·시위 통제령을 내린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앞서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시위로 거리를 점령하면 사회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파트리아 불리치 치안 장관 및 산드라 페토베요 인적자원 장관도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은 지난 2001년 12월 19일과 20일 시위하다 공권력에 의한 사망한 39명을 기리는 기념일로, 이번 집회는 수주 전에 잡힌 것이나 시기적으로 밀레이 정부 출범 후 첫번째 반정부 시위 성격을 띠게 된 셈이다.
주최 측인 좌파 노동단체인 폴로 오브레로(노동자 집단)은 "개혁의 고통은 카스타(기존 정치인 및 기득권)가 감당한다고 하더니 우리 노동자들이 카스타냐"며 "물가 폭등으로 월급은 반의반의 반토막이 났다. 헌법에 보장된 시위조차 막는 정부가 말이 되느냐"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정부는 근교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진입하는 길목과 기차역에 대규모 경찰 인력을 배치했다. 기차역 전자 키오스크에서는 "시위로 도로를 점령하면 정부 보조금을 못 받는다"는 안내문을 볼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는 "시위로 도로를 점령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형사법에 저촉된다. 정부 보조금도 받을 수 없다. 누가 시위에 나오라고 협박하면 134번으로 전화해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현지 경찰은 버스에 올라 승객 얼굴을 핸드폰으로 촬영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시위가 시작된 오후 4시부터 관련 부처 각료들과 연방경찰 상황실에서 CCTV로 시위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사 알레한드라(47)는 "어떻게 교사 월급으로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데도 부족할 수 있는가"라며 "살인적인 물가도 물가지만, 이런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는 시위에도 참여할 수 없게 하는지 이건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함께 온 로레나(47)와 멜리사(40)는 "이게 시작이라면 갈수록 더하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 (경제) 위기가 아니라 사기다'라는 푯말을 든 엘레나(64)는 자신을 은퇴자라고 소개하면서 "버스비가 곧 10배 오른다고 하고 물가가 너무 뛰어 우유 한 통 가격이 얼만지도 모르겠다"며 "중산층도 이제 먹을 것 걱정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나왔다"고 했다.
그는 "오늘 밤 밀레이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600가지 경제규제 완화를 설명한다는데 또다시 실패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엘레나처럼 단체 소속 아닌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5월 광장은 경찰과 헌병에 의해 둘러싸고 있었다. 정부는 수천 명의 병력과 함께 기동대, 버스, 살수차 등도 현장에 배치했다.


우연히 시위대 옆으로 지나가던 사비나 프레데릭 전 치안장관을 볼 수 있었다. 프레데릭 전 장관은 연합뉴스에 "시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불리치 치안장관이 발표한 피켓시위 프로토콜을 살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 순간 엄청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 경찰 버스 그리고 살수차 등이 지나가자 프레데릭 전 장관은 이를 두고 "시위대에 겁을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면서 헌병이 시위에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냐는 질문에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2017년 마크리 정권 때 마지막으로 헌병들이 배치됐으며 공교롭게도 그 후에 마크리 정권이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한 시민은 "밀레이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자신도 도로를 막고 한 시위에 참여했고 불리치 장관은 70년대 몬토네라(페론당 과격 청년단체) 소속으로 활동한 사람인데 자신들이 시위하면 옳은 거고 내가 하면 나쁜 거냐"며 "밀레이 지지자들이 대통령 취임식 참여를 위해 행진하는 것은 괜찮고 우리가 평화롭게 행진하는 것은 왜 협박받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돌아오는 길에 몸을 실은 택시의 기사는 자신을 70대 은퇴자라고 설명한 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시위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 시위를 주최한 노동자 단체는 최소 5만여명이 운집할 것이라고 했으나, 정부의 대대적인 경찰력 배치 등 때문인지 주최 측 추산 1만5000여명으로 집계됐다. AP통신은 이날 집회가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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