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전 희생자"…하버드가 불붙인 문화전쟁, 대선 뇌관되나

입력 2024-01-03 17:28  

"대리전 희생자"…하버드가 불붙인 문화전쟁, 대선 뇌관되나
물러난 흑인 총장, 표절 의혹 결정타였지만…"다양성 문제, 美 보수의 승리"
공화 의원 "두명 날렸다" "이제 시작" 자축…트럼프·디샌티스, 전선 주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취임 5개월여만에 불명예 퇴진한 미국 하버드대 클로딘 게이 총장의 사퇴는 미 보수 진영의 큰 승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1636년 개교 이후 첫 흑인 총장으로 주목받았던 게이 총장은 반유대주의 논란에 이어 과거 논문 표절 의혹까지 잇따라 터져 나오자 결국 자진 사퇴를 택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논문 표절 의혹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이를 단순히 학계 부정 스캔들로만 보기는 어렵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이번 사태를 캠퍼스 정치를 둘러싼 '대리전'으로 칭하면서 "많은 게이 총장 비판론자들에게 있어 그의 하차는 미국의 고등교육을 두고 고조되는 이념 전쟁에서의 대리 승리가 됐다"고 촌평했다.
영국 BBC 방송은 게이 총장에 대해 '캠퍼스 문화 전쟁의 희생자'라 칭했다. 그리고 게이 총장의 취임 직후부터 이념적 이유로 그를 반대해온 보수주의자들이 그의 사퇴를 주목할만한 승리로 축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이 총장은 지난달 5일 미 연방하원이 아이비리그 명문대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반유대주의 움직임과 관련해 개최한 청문회 참석 이후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았다.
엘리스 스터파닉 공화당 하원의원이 '유대인 학살하자는 일부 학생들의 주장이 대학 윤리 규범 위반이 아니냐'고 묻자, 게이 총장은 "개인적으로 끔찍한 발언"이라면서도 "하버드대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BBC는 게이 총장을 비롯해 당시 참석자들이 '미적지근하고 관료적인 답변'을 했다고 전했다.
이후 게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 제기를 주도한 것은 미 교육 현장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CRT)을 가르친다며 문화전쟁을 이끄는 것으로 유명한 우파 활동가 크리스토퍼 루포였다.
루포의 주장은 뉴욕포스트, 워싱턴 프리 비컨 등 보수 매체에 의해 더욱 힘을 받았다.


교내에서도 게이 총장에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했다. 우파 진영은 미 고등교육이 학문적 엄격함보다 인종, 성별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좌파 이데올로기에 지배됐다고 게이 총장의 자격까지 문제 삼았다.
게이 총장은 사퇴 서한에서 '인종적 적대감에 기반한 위협과 인신공격을 당했다'며 지난 몇주간은 '모든 형태의 편견과 증오에 맞서 싸우는' 등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보수 진영은 그의 퇴진을 정치적 승리로 규정했다.
청문회에서 그를 몰아붙였던 스터파닉 하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제 질의에 대한 게이 총장의 도덕성이 결여된 답변은 미 의회 역사상 가장 많은 이들이 본 의회 증언으로 만들었다"며 "이는 사상 가장 큰 대학 스캔들이 될 사건의 시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버드대 졸업생인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청문회에서 매우 명확한 도덕적 질문이 없었다면 이러한 책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두 명 날렸다"(TWO DOWN)고 적었다. 청문회에 참석했던 3명의 총장 중 게이 총장과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유펜) 총장 2명이 사퇴했다는 의미다.
앞서 매길 총장이 사퇴했을 때는 "하나는 날렸고, 둘 남았다"고 썼다.
그의 보좌관 중 한명은 소셜미디어에 농담삼아 '이제 스터파닉 의원이 실질적인 하버드대 총장'이라 말하기도 했다.
역시 하버드 졸업생인 비벡 라마스와미 공화당 경선 후보는 게이 총장의 사퇴 발표 후 소셜미디어에 "그들이 게이 총장을 택한 것은 인종과 성별에 대한 아주 은근한 연습이었다"고 비꼬았다.

반발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미 작가 셀레스트 응은 소셜미디어에 "그래서 우리가 배운 것은 반유대주의를 걱정하는 척하는 악의에 찬 편협주의자들이 기꺼이 유색 인종 여성, 특히 흑인 여성을 대규모 시스템의 희생양이자 비판의 방패막이로 이용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적었다.
하버드대를 둘러싼 논쟁은 게이 총장의 사퇴로 일단락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미 고등교육의 진보 성향을 향한 보수 진영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문화전쟁이 대선 과정에서 하나의 전선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공화당 경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모두 대학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교육 과정 폐지를 주장한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플로리다주 뉴칼리지의 DEI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교수진을 해임한 데 이어, 루포 등 우파 활동가를 기금 이사회에 앉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공약 '어젠다 47'에서 '미 전통과 서구 문명 수호'를 강조하기 위해 미 대학 인가 방식 변경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미 최고 명문대의 총장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보수 진영이 일단 상당한 승리를 거뒀다는 게 BBC의 진단이다.
noma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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