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2년 키이우에서] 추위 속 도심 전몰자 추도 인파…"우리가 원하는 건 평화"

입력 2024-02-19 10:30  

[전쟁2년 키이우에서] 추위 속 도심 전몰자 추도 인파…"우리가 원하는 건 평화"
악몽 속 일상 이어가는 우크라…유로마이단 혁명 추모, 시내 대규모 행진
국기 나부끼는 광장마다 가족·연인들 가득 "애국심 길러야"
방공호 된 지하철 '경보음 울리면 이곳으로'…시민들 "전쟁에 적응,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낮 기온이 영상 3도까지 떨어진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빗방울과 눈발이 번갈아 내렸다.
지난주 10도까지 오르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인지 시내 중심가도 휴일답지 않게 썰렁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고 승전을 기원하는 장소들만큼은 추모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황금 돔 수도원이 있는 미하일리우스카 광장에는 개전 초기 키이우 코앞까지 왔다가 퇴각한 러시아군들이 버리고 간 탱크와 전투차량이 아직 전시돼 있었다.
파랑과 노랑의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고 바구니에 든 기념품을 흔들며 사람들에게 인사하던 루산 씨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부터 장병들을 위한 모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도 예전에 군에 몸담았다는 그는 "무기가 부족하다"며 "지금까지 무인기(드론) 20대를 사서 전선에 보냈고, 음식과 생필품도 되는 대로 보낸다"고 말했다.
어린 남자아이 둘과 전시된 차량들을 유심히 둘러보던 알렉시 씨는 "아들들을 데리고 왔느냐"는 질문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친동생들"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해온 직후 폴란드로 급히 피신시켰던 동생들을 이날 오랜만에 고향으로 데려오게 됐는데, 산책할 겸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알렉시 씨는 "동생들은 바로 우크라이나를 떠났기 때문에 도시가 폐허가 된 모습을 못 봤었는데, 여길 와보고 놀라 한다"며 "애국심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하일리우스카 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독립광장이 있다.
10년여 전 친러시아·반서방 노선을 펴며 EU 가입 논의를 전면 중단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을 몰아낸 '유로마이단 혁명'의 무대였다.
우크라에서는 혁명이 본격 시작된 2013년 11월21일을 기념해 매년 이날을 유로마이단 혁명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현지에서 '존엄과 자유의 혁명일'로 불린다.
이어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4년 2월18일 키이우에서는 2만명의 시민이 우크라이나 헌법을 2004년의 헌법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후 5시30분쯤 어슴푸레해지는 하늘에 쩌렁쩌렁 구호가 울려 퍼지더니 도로 멀리서 광장을 향해 10년 전 그날을 기리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해왔다.
대열 속에서 걷던 한 여성은 "오늘은 10년 전 유로마이단 혁명 때 죽고 다친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라며 "그때도 시위는 평화로웠고, 우리가 지금 원하는 것도 평화'라고 설명했다.
전사자들의 사진과 수천개의 깃발이 수 놓인 광장 한 켠에는 꽃을 가져다 놓거나 촛불을 붙이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키이우주(州) 외곽 도시에서 상경해 아들 부부와 손자를 데리고 광장을 찾은 율리아 씨는 "아는 사람들이,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며 "눈물 없이 지내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여기에서 무슨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흐레샤티크 역에서 우니베르시테트 역까지 지하철을 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까지 내려가는 데에 2분이 넘게 걸렸다.
최대 심도가 100m가 넘을 정도로 깊이로 유명한 키이우 지하철은 전쟁 발발 직후 공습 경보가 울릴 때마다 방공호로 쓰인다고 한다.
지하 벤치에 앉아 친구를 기다리던 대학생 예우헤니 씨는 "요즘도 경보음이 울리면 여기로 내려온다"며 "하루에 세 번까지도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새벽 4시에 엄청난 폭음에 놀라 깼던 것이 생생하다"면서도 "이제는 전쟁에 적응할 수밖에 없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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