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 무기라도 사자"…유럽 재무장 늑장에 속타는 나토

입력 2024-02-25 18:57  

"한국제 무기라도 사자"…유럽 재무장 늑장에 속타는 나토
우크라 포탄 100만발 지원 '절반만 달성'…"전시 경제와 거리 멀어"
유럽 방산업체들 "정부가 정치적 의지 보여야 생산량 확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도 155㎜ 포탄을 비롯한 주요 무기의 유럽내 생산량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4일(현지시간) 유럽방위청(EDA) 자료를 인용, EU 27개 회원국이 2022년에만 520억 달러(약 69조원)를 새 군사장비 조달에 사용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요성이 재확인된 155㎜ 포탄 연간 생산량은 지난 2년 사이 40%가량 증대됐다. 주7일, 24시간 가동되는 핀란드 등지의 일부 공장은 전쟁 이전보다 생산량이 4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길이가 1천㎞에 이르는 광활한 전선에서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막아내기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EU 회원국들은 당장 우크라이나에 12개월에 걸쳐 155㎜ 포탄 100만발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못했다.
기한인 3월말까지 전달될 포탄의 개수는 당초 계획의 절반을 간신히 넘긴 52만4천발이 될 예정이다.



그런 가운데 최대원조국인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의회내 공화당 강경파들에 발목이 잡혀 610억 달러(약 81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원조 패키지를 수개월째 처리하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궁지에 몰리게 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동부전선 격전지 아우디이우카에서 패퇴했고, 남부전선에서도 크림반도로 진격하기 위해 드니프로강 건너 크린키 지역에 구축한 거점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러시아군을 저지할 포탄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는 매달 최소 20만발의 포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유럽이 생산하는 포탄 개수는 여전히 월 5만발 안팎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전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게 아니라고 에스토니아 당국은 최근 진단했다.
카미유 그랑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투자 담당 사무차장보는 유럽 각국 지도자들의 약속과 달리 "우리는 (무기) 생산량이 전시 경제와는 거리가 먼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한 나토 당국자는 유럽 각국이 방위산업 공급망 유지를 위한 지출을 꺼려온 것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유럽에서 국방 관련 투자는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나라에서 제설기에 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졌다면서 "많은 동맹국에 포탄 생산과 관련한 문제는 흥미를 느낄수 없는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미·소 냉전 종식으로 대규모 전면전에 대비할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해외에서의 소규모 작전에 맞는 형태로 방위산업을 재편하고, 여러 기업을 민영화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임스 블랙 랜드연구소 유럽사무소장은 "유럽은 전시 상황에서 산업을 동원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려 노력 중이지만, 이건 단순히 스위치를 켜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EDA는 유럽의 포탄 생산량을 올해 말까지 연간 140만발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지만, 유럽 방위산업체들은 각국 지도자들이 충분한 정치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불퉁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외하면 장기적 수요가 확실치 않은 만큼 생산라인 증설, 인력 충원, 핵심자재 확보 등에 나서기엔 경영상 리스크가 큰 데 정부가 장기계약이나 지속적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독일 라인메탈과 핀란드 파트리아, 스웨덴 사브 등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속한 단체인 유럽 항공우주방위산업 협회(ASD)는 무기 생산능력 확장을 위해선 각국 정부가 '위험분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WP는 "방위산업이 정부의 직접적 통제하에 있던 냉전기와 달리 오늘날의 방위산업체들은 우크라이나를 돕는데 참여하길 원하면서도 주주들에게도 답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고 이러한 갈등의 배경을 설명했다.
유럽산 주력전차만 17종에 이를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파편화돼 있는 유럽 방위산업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앞서 유럽의회가 발간한 관련 보고서는 국방 관련 투자를 효율적으로 재편한다면 유럽 전체에서 연간 800억 달러(약 106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유럽의 무기생산능력이 빠른 시일내에 복구되기 힘든 상황이 되자 러시아와 지리상 근접한 폴란드 등은 FA-50 경공격기와 K-2 전차 등 한국산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했으나 우크라이나에 보낼 포탄 등과 관련해선 여전히 대안이 마땅찮은 실정이다.
유럽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제3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프랑스 등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익명을 요구한 나토 당국자는 "모두가 국내시장이 이익을 보길 원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편협한 지역주의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최선의 거래처가 한국이라면 우린 한국제를 사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핵심은 냉전 종식 이후 군축을 계속해 온 유럽 각국이 군수제조 역량을 되살리는데 충분한 예산을 배정할 것인지가 될 것이라고 WP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적 중립 전통을 버리고 나토에 가입한 핀란드의 안티 카이코넨 국방장관은 "모든 전체주의 국가가 서방이 방위산업 역량과 관련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를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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