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성난 군중에 맞아 죽은 8세 소녀 살인범 사건이 던지는 함의

입력 2024-04-07 07:00  

[특파원 시선] 성난 군중에 맞아 죽은 8세 소녀 살인범 사건이 던지는 함의
'실종된 정의'에 멕시코인들 저항…법이 바로 서지 않으면 미래 없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5%'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추산한 멕시코의 강력범죄 검거율이다.
이 수치는 전체 범죄 검거율로 확대하면 더 처참하게 곤두박질친다.
멕시코 시민사회단체인 '임푸니다드 세로'(불처벌 제로)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범죄 100건 중 6.4건만 신고되고, 신고된 범죄 100건 중 14건이 해결된다.
다시 말해 멕시코에서 범죄자를 붙잡을 확률은 0.9%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99.1%의 범죄 용의자를 어딘가에서 웃게 만드는 멕시코의 불안한 치안은 시민들의 자기방어 기제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대중교통을 탈 때 가방을 앞으로 맨 채 가슴으로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외국인 아니면 도둑'이라는 멕시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밈(Meme)은 마냥 웃어넘길 말한 일은 아니다.
처벌받지 않는 '실종된 정의'는 시민들에게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8세 소녀 카밀라 피살 사건'이 그 대표적인 방증이다.
은광으로 유명한 게레로주(州) 탁스코에 살던 카밀라는 지난달 27일 오후 이웃집에 가려고 외출했다가 이튿날 새벽 외곽 고속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게레로 검찰에 따르면 시신은 쓰레기통 안에 유기돼 있었다.



주민들은 이 사건에 크게 반발했다.
관광 도시로 '돈이 도는' 탁스코가 최근 수개월 새 마약 밀매 집단의 활동 무대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면서, 치안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던 터였다.
도로 한복판에 차량을 일부러 전복시켜 놓고 길을 막은 채 신속한 살인범 검거 촉구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은 '경찰이 범인 중 1명을 특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의자 주거지에 몰려갔다.
이어 경찰의 손에 붙들린 채 차량에 탑승했던 피의자를 끌어낸 시민들은 피의자를 향해 발길질과 몽둥이세례를 시작했다.
이를 말리지 못하는 경찰의 모습은 동영상에 고스란히 녹화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유됐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간 피의자는 결국 숨졌다.
군중을 성난 폭도로 만들어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한 이번 사건은 멕시코 사회에서도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돈을 뜯어 가는 갱단에 맞서기 위해 민병대를 조직해 자구책을 마련하는 등의 사례는 전에도 적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피해자 가족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분기탱천해 사적 제재를 가한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시각이다.
이는 결국 '불처벌이 일상화한 멕시코 치안 상황에 대한 분노와 맞닿아 있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 힘들다.



성난 주민을 보듬어야 할 일부 공직자들 언행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1월 갱단 폭력으로 대중교통 운행 중단 등 도심이 사실상 마비됐을 때 스페인 관광박람회장에 있었던 마리오 피게로아 탁스코 시장은 이번 사건을 주 정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의 탓으로 돌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여기에 더해 이 지역 치안 담당이었던 도로테오 바스케스는 "카밀라의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취지로 말해, 국제앰네스티와 주민들의 반발을 자초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천혜의 자연환경, 세계적인 미식 문화, 고대 문명이 남긴 고고하고 신비로운 유적, 주민들의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 등 다양한 매력을 보유한 나라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미국 시장을 겨냥한 '니어쇼어링'(기업이 본국과 가까운 곳에 생산시설을 둠으로써 운송비와 시간을 절약하는 등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등 장점이 숱하다.
그럼에도 '치안 안정'라는 당면한 숙제 해결 없이는 국가 발전을 위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walde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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