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베트 보고서에서 부적절 대응 시인…네타냐후 정책 비판도
바르 국장 "다르게 행동했다면 학살 피했을 것, 평생 짊어질 짐"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가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있기 직전 일부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사실을 시인했다.
4일(현지시간) 예루살렘포스트, 와이넷 등 보도에 따르면 신베트는 이날 펴낸 8페이지 분량의 조사 보고서 요약본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지난달 28일 이스라엘군이 자체 보고서를 발간한지 나흘 만이다.
신베트는 기습 공격 전날인 2023년 10월 6일 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용 휴대전화 심카드(유심칩) 45개가 일제히 활성화된 것을 확인하는 등 이상 징후를 탐지했다.
신베트는 이와 관련한 정보를 이튿날 오전 3시3분 군, 경찰, 그리고 국가안보회의(NSC)에 전달하며 "하마스의 공격 활동을 나타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 경고에 하마스의 잠재적 공격 규모나 시기 등이 구체적으로 담기지는 않았다. 신베트 정예 대원과 경찰관 일부가 가자지구 국경에 추가로 배치됐지만 잠시 후 오전 6시30분께 이뤄진 하마스의 대규모 급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베트는 보고서에서 그해 4월과 직전 해 10월에 가자지구에서 각각 37개, 38개의 이스라엘 심카드가 활성화된 후 하마스의 침공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유사한 사례를 봐도 하마스의 의도를 간파하기 어려웠다는 취지다.
신베트는 기습 피해 전날 가자지구 국경을 따라 촘촘히 배치된 센서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신베트의 가자지구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하마스 공격 직전까지 휴민트를 통해 파악된 현지 분위기는 "일상적이고 규칙적"이었다는 것이다.
신베트는 2018년과 2022년 입수한 일명 '예리코 성벽' 문서에 담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계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를 임박한 위협으로 처리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준비가 부족했다"며 "이 실패가 전쟁 발발 몇시간 전 정보 수집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과 정보 협력도 부족했다고 언급했다.
다만 신베트는 "하마스가 부상하고 공격을 감행하게 된 주된 원인은 하마스가 강화되도록 한 (이스라엘 내각의) 온건한 정책, 하마스 군사조직에 대한 카타르의 자금 지원, 이스라엘 정보조직의 침식, (팔레스타인인) 수감자에 대한 처우 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근본적 책임을 돌리는 문구로 해석됐다.
네타냐후 내각은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힘을 빼고 가자지구 현상 유지를 위해 경쟁 정파인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하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가까운 카타르 정부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명목으로 가자지구에 현금에 전달하는 것도 묵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네타냐후 연립정부에 참여했던 극우 정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국가안보장관을 지내던 시기 동예루살렘의 성지이자 화약고인 '성전산'(알아크사 사원)과 관련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팔레스타인 수감자 처우를 악화시키는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민심을 자극했었다.
로넨 바르 신베트 국장은 이날 별도 성명에서 "우리는 10월 7일 학살을 막지 못했다"며 "기관 수장으로서 이 무거운 짐을 평생 어깨에 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 국장은 "공격이 있기 몇 년 전 동안이나 공격이 일어난 날 밤에 직업적으로, 관리적으로 다르게 행동했다면 학살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스스로에 기대했던 수준이 아니었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신베트는 상대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위협을 미리 막고자 했지만 우리는 실패했다"며 조사위원회 구성을 통한 광범위한 진실 규명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내각은 지난달 초 국가조사위원회 구성 여부에 대한 결정을 3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당시 회의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조사위 출범을 지지하는 바르 국장을 직접 언급하며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해 약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이 시작된 지 15개월 만인 지난 1월 19일 휴전에 돌입했다. 42일간의 휴전 1단계가 만료된 지 사흘이 지난 이날까지도 양측이 휴전 연장 방안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교전이 곧 재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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