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이 美기업에 지급한 반도체 특허 사용료 과세 가능 여부 쟁점
'국세청 원천징수' 30여년간 패소…승소시 국부유출 제동, 세수 증대 효과도 커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기업에 지불한 특허 사용료와 관련해 30년 넘게 이어져 온 과세권 논란이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스마트폰을 만드는 국내 대기업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의 특허 사용료를 외국 기업에 내고, 우리 과세당국은 외국기업에는 사용료 소득에 대한 법인세를 원천징수 한다.
유독 미국 기업들은 한미 조세조약을 근거로 특허 사용료 관련 법인세 원천징수를 거부하며 우리나라 과세당국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사한 사건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 국세청 "원천징수 대상" vs 美특허기업 "법인세 돌려달라"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미국 A법인이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경정거부처분취소 소송 사건 상고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심리 중이다.
A법인은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특허권 사용료를 받아오다가 국세청으로부터 법인세를 원천징수 당하자 환급을 요구하는 경정청구를 했다.
국세청은 원천징수가 정당하다고 맞섰고 결국 A법인은 경정청구를 거부한 과세당국의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과세당국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 기업에 지급한 특허 사용료는 다른 외국기업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원천징수 해야 할 국내원천소득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외국 기업과 달리 미국 특허기업에만 1992년 첫 판결 이후 일관되게 국내 과세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단의 근거는 한국과 미국이 맺은 조세조약이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와의 조세조약에서는 특허 기술 사용료 과세 주체를 지급지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한다. 즉 특허 사용 대가를 지급하는 기업이 속한 국가에 과세권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조세조약에서는 사용지를 기준으로 과세권을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사용료 대상이 되는 특허 기술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될 때만 국세청이 과세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세당국은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미국기업의 특허라고 해도 국내 기업이 국내에서 해당 특허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 만큼 우리나라에 과세권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대법원은 특허는 등록된 국가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특허 속지주의에 주목했다. 국내에 등록되지 않고 미국에만 등록된 특허는 특허 속지주의에 따라 국내에서 효과가 없고 결국 사용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조세조약 상 사용지가 될 수 없으니 사용료에 과세할 수도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대법원의 판단이다.

◇ 국세청, 30여년간 과세권 확보 노력…올해 승소 판례도 나와
정부는 패소가 거듭되자 특허 속지주의와 별개로 한미 조세조약이 정한 특허 사용 개념을 확실히 하기 위해 법령 조문을 정비해왔다.
2008년 법인세법을 개정해 특허권 등이 국내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 제조·판매 등에 사용된 경우 국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명시했다.
2019년에는 같은 조문에 국내에서 사용되는 국내 기업이 지급한 미등록 특허 사용료를 원천징수 대상인 국내 원천 사용료 소득 중 하나로 추가했다.
대법원이 조세조약 상 사용지 개념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허 속지주의에 갇힌 나머지 과세권 판단이 쟁점인 사건에서 핵심인 사용지 개념 심리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판결에서는 과거와 다른 기류 변화가 읽히기도 한다.
대법원은 2022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제기한 특허권 사용료 원천징수에 대한 경정청구거부처분 소송 상고심에서 과세당국의 새 주장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특허 속지주의를 중시한 법리를 변경하지 않았지만 사용료에는 특허권 외 다른 지식재산에 대한 대가도 포함된 만큼 심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올해 2월 수원지법은 유사한 경정청구거부처분 소송 재판에서 과세당국에 과세권이 있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기도 했다.

◇ 대법 전원합의체서 심리…기존 판례 변경 가능성 주목
이번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점도 주목을 받는다. 그만큼 미등록 특허 사용료 과세권에 대한 법리 다툼이 치열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통상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참여한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은 사건, 혹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건은 대법관 회의를 통해 전원합의체로 넘긴다.
올해 소송이 진행 중인 미등록 특허 관련 세수 규모만 4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 범용화로 반도체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 비춰보면 향후 과세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국내 과세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 선고가 나오면 국부 유출에 제동을 걸고 안정적인 세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국제조세협회 국제조세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등록 특허 사용료에 대한 원천징수 여부는 학계에서도 오래된 쟁점 사안"이라며 "최근 법 조문도 과세권을 부여하는 쪽으로 정비되면서 이번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 대상으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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