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네팔은 히말라야에 위치한 소국(小國)이다. 1768년 샤 왕조가 세운 군주정은 239년간 지속됐다. 국왕이 행정·입법·사법을 틀어쥔 전형적인 왕정 국가였다. 1990년 '자나 안돌란(Jan Andolan)'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비렌드라 국왕은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다당제와 헌법 개정에도 의회 정부는 부패와 분열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마오이스트 반군이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 내전이 터졌고, 2001년에는 국왕이 피살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왕정은 2008년 폐지되고, 네팔은 연방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됐다.
네팔 정부는 지난 6일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엑스(X) 등 미등록 소셜미디어(SNS) 26개를 차단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시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거리엔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왔고, 수도 카트만두 의회 청사 앞에선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도 동참했다. 경찰은 최루탄·고무탄을 쏘며 진압했지만, 시위는 순식간에 유혈 충돌로 번졌다. 이틀 만에 최소 19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다쳤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내각 장관들이 사임했고, 올리 총리마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도부 교체만으로는 분노를 잠재울 수 없었다. 일부 시위대는 정당 당사에 방화를 시도하는 등 시위는 반정부 투쟁으로 확산했다.
네팔 정부가 내세운 SNS 차단 이유는 '허위정보 확산 방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네포 키즈(Nepo Kids)'라고 불리는 권력층 자녀들의 사치와 특권을 비판하는 온라인 여론을 막으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앞서 국민은 이미 2023년 부탄 난민 사기 사건을 통해 정치 엘리트 전체의 부패를 목격했다. 코로나19 시절에도 공공 조달 비리 의혹이 쌓였다. 여기에 왕정의 권위주의 유산과 내전의 불신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사회적 균열 위에 쌓인 분노가 SNS 차단이라는 뇌관을 만나 폭발한 셈이다. 특히 SNS 세대의 분노는 항쟁으로 비화했다. 네팔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통제와 부패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 것이다.
네팔 정부는 시위가 번지자 SNS 차단 조치를 철회하고 조사위원회를 꾸렸지만, 국민의 불신을 씻기에는 역부족이다. 정치권은 연립과 분열을 반복하며 합의 능력을 상실했고, 국제 사회의 우려 속에서도 군 병력이 도심에 배치됐다. 시위가 지속된다면, 네팔은 또다시 내전의 악몽에 시달릴 수 있다. 반대로 국민들의 변혁 열망이 제도 혁신으로 이어진다면, 네팔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해법은 부패 척결과 권력의 투명성 확립에 있다. 이를 외면한다면, 네팔 정국은 또 한 번 불안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태는 몇몇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MZ세대가 시위를 주도한 점은 네팔 정치에서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네팔 정부의 SNS 차단은 단순한 인터넷 규제였지만, 희망을 놓은 청년들에겐 억눌린 분노를 분출하는 기폭제였다. 정치의 신뢰를 잃은 사회에서 SNS는 곧 민주주의의 광장이자 저항의 무대다. 우리도 12·3 계엄 사태 과정에서 SNS를 통한 신속한 정보 공유와 시민들의 즉각적 대응을 목격한 바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고갱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매 맞고 발가벗겨지고…네팔 시위대, 장관 상대 분풀이 #sh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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