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격차 줄 수 있지만 자산 불평등은 심화…자동화 때보다 딜레마 뚜렷"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임금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지만 자산 수익률 상승 효과로 부의 불평등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 "AI 기술로 고소득 노동 대체 가능성 높아"
21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IMF는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 'AI 도입과 불평등'(AI adoption and inequality)'에서 AI 기술 도입이 임금·자산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기존 자동화 효과와 비교해 분석했다.
분석 자료는 2016∼2020년 영국 가계의 금융자산과 소득 등을 분석한 자산·부(Wealth and Assets Survey, WAS) 조사를 활용했다.
보고서는 AI 도입이 임금·자산소득에 미치는 효과를 크게 3가지로 구분했다.
AI가 사람이 하던 업무를 대체하면서 생기는 임금 감소, 노동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 증가, 데이터 효율성 개선 등에 힘입은 자본 수익률의 상승 등이다.
이 3가지 요소가 임금·자산 불평등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AI 활용 수준과 기술 노출 정도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예상되는 임금 감소는 주로 고소득 노동자에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AI 기술과 관련성이 높은 직업군이 저소득 노동자보다는 고소득 노동자에 더 많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10% 노동자 중 AI로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직종 종사자는 약 60%에 달했지만 하위 10% 노동자는 15%에 불과했다.
이는 과거 자동화 기술이 단순노무직 중심으로 저소득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축시킨 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자동화는 저소득 노동자가 가장 큰 피해를 봤지만 AI는 정반대"라며 "자동화의 영향을 받은 최하위 소득 노동자 비중은 약 50%였지만 고소득 노동자 비중은 20% 미만이었다"라고 설명했다.
AI가 고소득 노동자의 업무를 대체해 임금이 줄어들면 임금 불평등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는 1.73%포인트(p)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다만 보고서는 고소득 노동일수록 AI의 도움을 받아 노동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임금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자동화가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감소 외에 별다른 긍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과 다른 점이다.
AI가 데이터 효율성을 높여 자본 수익률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점도 고소득 노동자에 유리한 요소로 꼽혔다. 고소득 노동자일수록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 투자 자산이 많다는 점에서다.
결국 AI의 업무 대체에도 노동생산성 향상, 자본수익률 증가 등에 힘입어 부의 지니계수는 7.18%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임금 불평등 지니계수의 완화 수준(-1.73%p)와 비교하면 상승 폭이 크다. 그만큼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소득 감소 폭보다 자본소득의 확대 효과가 더 크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AI는 노동시장을 교란해 임금 불평등을 줄이는 동시에 부유층 가계의 자본소득을 증가시켜 부의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AI로 생산성↑·불평등↑…자동화보다 딜레마 더 뚜렷"
생산성 혁신을 위한 AI 도입이 부의 불평등을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은 자산 양극화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최근 들어 소득보다는 자산 중심으로 악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 지니계수는 2022년 0.324로 전년보다 0.005 하락하며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1년 이후 가장 낮았다.
하지만 총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 기준으로 작성된 지니계수는 2011년 0.619에서 2017년 0.584까지 하락했다가, 2018년부터 5년 연속 상승했다.
이재명 정부가 AI 기술을 주요 성장 전략으로 앞세워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했지만 불평등 심화를 포함한 부작용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찾기 어렵다.
AI 기술 도입과 동시에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초혁신 투자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자칫 글로벌 AI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큰 탓이다.
IMF 보고서도 AI 도입으로 정부의 정책 딜레마가 그 어느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자본세 등 대부분의 불평등 완화 정책은 궁극적으로 AI 도입 유인을 줄여 생산성 혁신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보고서에 소개된 정책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초래된 자산 격차를 줄이기 위해 15%의 자본세를 부과하면 생산성 혁신이 저해를 받는 정도가 과거 자동화 때의 두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혁신 기회를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자동화'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과거 자동화보다 AI가 더 많이 활용될 수 있지만 이는 생산성 혁신과 불평등을 모두 강화할 것"이라며 "AI는 정책 입안자에게 과거 기술보다 훨씬 더 뚜렷한 딜레마를 제시한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AI 도입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정책이 가장 바람직한지는 미완의 과제로 남겼다.
보고서는 "AI 도입에 대응하는 재분배 정책의 효율성 효과를 신중히 고려해야 하지만 '최적 정책(optimal policy)'에 대한 완전한 분석은 향후 연구 과제로 남긴다"고 썼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AI 기술에 따른 생산 효율화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는 인력들을 어떻게 산업별로 재배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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