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주 고려대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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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세계 최대 개발원조기관인 미국의 국제개발처(USAID)가 해체됐다. 국제개발처가 수행하던 사업의 83%가 중단되고 인력은 94%가 해고됐다. 남은 사업은 미국 국무부가 흡수한다고 발표했다. 1월 20일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 출범 직후 USAID 예산 삭감과 폐쇄 등을 단행했다. 불과 6개월 만에 기관 자체를 해체했다.
해체 사유는 USAID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정부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 아래 국익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트럼프 정부가 취임과 거의 동시에 USAID를 해체한 것은 이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해왔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 선진국 ODA 지갑 닫는다…주요 4개국 첫 동시 '삭감'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사회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ODA) 총액은 2024년 전년 대비 7.1% 줄었다. 2025년에는 최소 9%에서 최대 17%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32개 회원국 중 한국과 벨기에 등 9개국을 제외한 23개국에서 지원을 줄였다. 2025년에는 11개국이 예산 삭감을 발표했다.
특히 세계 ODA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미국·독일·영국·프랑스가 2년 연속 동시에 예산을 삭감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은 2024년 633억 달러(약 88조8천억원)를 제공해 DAC 전체의 29.8%를 차지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격적인 USAID 해체는 이러한 개발원조 후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미 트럼프 이전에도 개발원조의 원조국이라 불리던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뒤 2020년 9월 개발원조 주무 부처인 국제개발부(DFID)를 전격 해체하고 외교·영연방부로 통합했다. 브렉시트에 이어 개발원조의 축소까지 이어진 배타적 국익 추구 노선은 영국 경제의 장기 침체와 그로 인한 여론 악화가 배경에 있었다.
◇ 도전받는 국제개발협력 체제와 규범
최근 국제개발협력의 후퇴 추세는 이를 조율해온 국제협력체제와 규범을 크게 흔들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1기 때인 2017년 유네스코(UNESCO), 2018년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 탈퇴했고, 202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도 발표했다. 비록 연임에 실패하면서 WHO 탈퇴는 보류됐지만 2025년 1월 재선과 동시에 다시 탈퇴를 선언했다. 트럼프 정부는 양자 원조뿐 아니라 UN기구 중심의 다자원조와 개발협력에도 일관되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초 UN은 1961년 '개발의 십년'(Development Decade)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식민지에서 독립한 제3세계 신생 국가들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개발'을 국제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제기했다. 이어 1970년 제2차 개발의 십년을 선포했다. 선진국들이 국민총생산(GNP)의 0.7%를 개발도상국 ODA로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ODA는 1969년 OECD가 도입한 개념으로 상업적·군사적 목적을 배제하고 순수한 공적자금만으로 이뤄지는 국제원조를 뜻한다. 이후 이 개념이 국제개발협력의 중요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ODA가 국익과 상충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으며 국제개발협력의 체제와 규범이 도전받고 있다. ODA와 보완적으로 민간자금을 활용해 개발금융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민간의 이익 추구 동기를 개발로 유도하는 시장 경제적 접근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일대일로를 내세워 전통적 ODA 개념을 무시한 채 개발도상국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데 대한 미국의 불만도 이러한 주장에 반영돼 있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1기인 2019년 12월 소위 빌드(BUILD)법에 기초해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설립했다. 이 기구는 민간의 투자와 채권 등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에너지·인프라 등에서 기업과 함께 수익을 창출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구호 또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그대로 반영한다.
◇ 심각한 개발위기의 아프리카…한국의 국제개발 공헌
트럼프의 강경한 국익 추구 노선은 ODA의 중심의 개발협력에 중대한 도전을 가하고 있다. 이는 특히 아프리카 저개발국가들에 심각한 개발 위기를 시사한다.
UN이 지정하는 세계 최빈개도국(Least Developed Countries·LDCS) 44개국 중 32개국이 아프리카에 있다. 미국이 세계 ODA 총액의 거의 3분의 1을 지원해온 현실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미국 ODA 의존도는 매우 높다. 특히 보건·교육·인도적 지원 등 사회개발과 기후변화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부정적 인식은 이 분야에 치명적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등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시각도 다자원조 확대를 어렵게 한다.
한국은 2023년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아프리카 개발협력전략'을 수립했다. 2024년에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ODA 100억달러(약 14조원)·수출금융 140억달러(약 19조6천억원) 확대를 각각 공약했다. 그러나 국제사회 개발협력이 어수선한 후퇴의 시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도 쉽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추세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국제개발에 공헌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을 구축·재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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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동주 센터장
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시아·아프리카개발협력센터장, 영국 맨체스터대학 국제개발학 박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국제개발협력실장,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위촉전문위원,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국제개발협력학회 부회장·총무이사 역임, 국민포장(국제개발협력유공) 부총리 표창, 저서 '한국형 ODA모델 수립' 등 28권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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