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휴전 현장]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여기도 '작은 가자'"
전쟁 여파 관광객 발길 '뚝'…"휴전돼 다행이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감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모든 장애, 목졸림에서 해방되기를 원해"
(베들레헴=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팔레스타인에도 깊은 문화와 좋은 날씨, 아름다운 자연이 있지만…자유가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청년 사이프 수보(32)는 "딸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모르겠다"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연합뉴스는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작은 도시 베들레헴을 찾았다.
지난 2000년 이스라엘이 테러 방지를 이유로 주변에 높은 분리장벽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도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던 유명 관광지다.
하지만 성지순례 코스인 예수탄생교회 앞 광장은 이날 일거리를 찾는 현지인 가이드들만 서성일 뿐 썰렁했다.
곳곳에 즐비한 상점과 식당, 호텔 대부분은 아예 셔터를 내리고 휴업 중이었다.
골목 한편에서 기념품 공방을 운영하는 유수프는 기자를 불러세워 박하차를 내오더니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다"며 푸념했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구름 인파가 몰리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도 2년 연속 열리지 못했다.
유수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한 것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자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이 멈춰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곳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려도 집 안에 몸을 누일 수 있지만, 가자의 어린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정치 얘기는 안 하고 싶다"면서도 "솔직히 휴전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에 살던 그는 20여년 전 이스라엘의 통제가 심해지자 베들레헴으로 이사왔는데 먹고살기가 도통 좋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광장 건너 베들레헴시청에서 만난 루시 탈기에 부시장은 "휴전이 이뤄져 기쁘다"면서도 "수감자들이 풀려난 것처럼, 감옥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인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모든 장애와 방해, 목졸림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탈기에 부시장은 베들레헴 경제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곳 관광산업 규모가 2년 전의 1% 미만 수준으로 위축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검문소를 대폭 늘린 것이 베들레헴과 주변 지역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했다고 진단했다.
탈기에 부시장은 "우리는 서안의 '작은 가자'(mini Gaza) 안에 살게 됐다"며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베들레헴경찰서 앞 보도블럭에 기자와 함께 쭈그려 앉아 대화를 나눈 수보는 지난 2주 동안 한 푼도 벌지 못해 전기료도 내지 못할 지경이라며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나와 내 딸의 살림살이만 나아지면 된다"고 말했다.
수보는 전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이스라엘에서 풀려난 것에 대해서도 "며칠 전부터 이스라엘이 '환영 행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었다"며 "어차피 베들레헴 출신 13명인가가 곧장 이집트로 보내졌다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전날 석방한 수감자 약 2천명 중 테러 등 죄질이 심한 154명을 이집트로 추방한 바 있다.
수보는 길 건너 베들레헴경찰서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에서 해방시키겠다며 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전 PA 수반의 얼굴이 보였다.
수보는 "10월 7일 우리가 실수를 한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은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 있지 않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벌인 만행보다 2년간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잘못이 더 크다는 주장이었다.
d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전쟁 여파 관광객 발길 '뚝'…"휴전돼 다행이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감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모든 장애, 목졸림에서 해방되기를 원해"
(베들레헴=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팔레스타인에도 깊은 문화와 좋은 날씨, 아름다운 자연이 있지만…자유가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청년 사이프 수보(32)는 "딸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모르겠다"며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연합뉴스는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작은 도시 베들레헴을 찾았다.
지난 2000년 이스라엘이 테러 방지를 이유로 주변에 높은 분리장벽을 쌓기 시작한 이후로도 미국, 유럽, 한국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던 유명 관광지다.
하지만 성지순례 코스인 예수탄생교회 앞 광장은 이날 일거리를 찾는 현지인 가이드들만 서성일 뿐 썰렁했다.
곳곳에 즐비한 상점과 식당, 호텔 대부분은 아예 셔터를 내리고 휴업 중이었다.
골목 한편에서 기념품 공방을 운영하는 유수프는 기자를 불러세워 박하차를 내오더니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다"며 푸념했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구름 인파가 몰리던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도 2년 연속 열리지 못했다.
유수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한 것에 대한 생각을 질문받자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이 멈춰서 다행"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곳 사람들은 생활고에 시달려도 집 안에 몸을 누일 수 있지만, 가자의 어린 아이들이 추운 날씨에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정치 얘기는 안 하고 싶다"면서도 "솔직히 휴전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에 살던 그는 20여년 전 이스라엘의 통제가 심해지자 베들레헴으로 이사왔는데 먹고살기가 도통 좋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광장 건너 베들레헴시청에서 만난 루시 탈기에 부시장은 "휴전이 이뤄져 기쁘다"면서도 "수감자들이 풀려난 것처럼, 감옥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인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모든 장애와 방해, 목졸림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탈기에 부시장은 베들레헴 경제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곳 관광산업 규모가 2년 전의 1% 미만 수준으로 위축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 검문소를 대폭 늘린 것이 베들레헴과 주변 지역의 교류를 어렵게 하고 분위기를 더 가라앉게 했다고 진단했다.
탈기에 부시장은 "우리는 서안의 '작은 가자'(mini Gaza) 안에 살게 됐다"며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베들레헴경찰서 앞 보도블럭에 기자와 함께 쭈그려 앉아 대화를 나눈 수보는 지난 2주 동안 한 푼도 벌지 못해 전기료도 내지 못할 지경이라며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나와 내 딸의 살림살이만 나아지면 된다"고 말했다.
수보는 전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이 이스라엘에서 풀려난 것에 대해서도 "며칠 전부터 이스라엘이 '환영 행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었다"며 "어차피 베들레헴 출신 13명인가가 곧장 이집트로 보내졌다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전날 석방한 수감자 약 2천명 중 테러 등 죄질이 심한 154명을 이집트로 추방한 바 있다.
수보는 길 건너 베들레헴경찰서에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에서 해방시키겠다며 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야세르 아라파트 전 PA 수반의 얼굴이 보였다.
수보는 "10월 7일 우리가 실수를 한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은 그보다 더 심한 짓을 하고 있지 않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벌인 만행보다 2년간 전쟁을 치른 이스라엘의 잘못이 더 크다는 주장이었다.
d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