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 주민들, 휴전에도 강경 분위기 "테러리스트 하마스 위협 없어져야"
정착촌 예정지 'E1' 지역, 요르단까지 보이는 논란의 요충지

(E1·말레아두밈[요르단강서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거룩한 도시 앞에 새 마을의 초석을 두었다. '메바세레트아두밈'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4∼5㎞ 정도 떨어진 구릉지대.
모래와 바위 투성이인 척박한 땅에 얕은 수풀이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이스라엘이 세운 '유대·사마리아 경찰청' 건물 앞에 이같은 히브리어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표지판 앞에 서니 언덕 아래로 건물이나 나무가 하나도 없어 동쪽 유대광야의 요르단계곡까지 시야가 탁 트였다. 높게 솟은 산봉우리들 뒤로 50㎞쯤 지점에 위치한 요르단 살트 마을까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연합뉴스는 요르단강 서안의 메바세레트아두밈 정착촌 예정지, 이른바 'E1' 지역을 직접 찾았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유대인 정착민을 위해 주택 3천400호를 건설할 계획이다.
약 12㎢에 달한다는 넓은 부지는 오랫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 주춧돌 일부를 제외하면 아직 텅 비어 있었다.
가끔 언덕을 오르내리는 경찰차나, 기자의 움직임에 놀라 도망치는 사슴 비슷한 동물의 발소리가 적막을 깰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예루살렘과 말레아두밈 정착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데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요르단 접경지 사해까지 뻗은 1번 고속도로를 낀 중요한 입지라는 것이 와닿았다.
이스라엘은 E1을 안보 차원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긴다. 이곳으로 예루살렘 권역을 확장해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도 본다.
1990년대 처음 나온 E1 정착촌 구상은 이후 수차례 좌초됐으나, 2023년 10월 7일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 국면에서 다시 탄력받았다.
하지만 이는 요르단강 서안을 영토로 합병하자는 이스라엘 일부 각료들의 목소리와 겹치며 논란이 됐다.
지난 8월 보수 유대교 성향의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E1 계획을 승인하며 "'두 국가'라는 망상을 사실상 지워버리고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 심장부를 장악하는 것을 공고하게 하는 중대한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요르단에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을 성경 표현대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부르며 역사적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국제사회는 이곳에 이스라엘 유대인이 정착하는 것을 불법으로 본다.

게다가 E1 정착촌이 만들어져 예루살렘과 말레아두밈, 사해까지 이스라엘 통치 지역이 연결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 지역들이 남북으로 완전히 단절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궁극적인 해소 방안으로 거론되는 '두 국가 해법'을 막는 쐐기가 된다는 것이다. 전쟁 기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 사건이 빈발하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E1에 인접한 말레아두밈도 방문했다.
'정착촌'이라는 어감은 컨테이너 박스나 텐트 같은 임시 거주시설을 연상시켰지만, 실제 이 마을은 현대식 건물이 정돈된 모습으로 들어선 계획 신도시에 가까웠다. 이스라엘군이 지키는 검문소를 지나니 깔끔한 포장도로를 끼고 저층 주택들과 대형 쇼핑몰, 놀이동산 등이 보였다.
다만 분위기는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대도시와 사뭇 달랐다. 남성들은 대부분 정수리에 키파를 쓰고 허리에 옷술 치치트를 단 정통 유대교 차림이었다. 여성들도 상당수가 머리에 두건을 썼다.

주민들은 외국인의 방문이 익숙하지 않은 듯 기자에게 경계심을 보였다.
공원에서 한 유대인 커플에게 어렵사리 말을 붙였다. 예루살렘 출신 남성 아비아타르는 말레아두밈에 사는 약혼녀와 곧 결혼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비아타르는 휴전으로 인질이 풀려나는 것은 기쁘다면서도 "이번 전쟁을 시작한 것도, 계획한 것도 우리가 아니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테러리스트의 위협이, 하마스의 위협이 없어져야만 한다"며 "50년 전 욤키푸르 전쟁 때 우리가 무엇을 배웠나, 이번에는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말레아두밈 시장 가이 이프라프는 지난 1월 E1을 '트럼프 마을'로 이름 붙이자고 주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이 계속되면 휴전을 이뤄낸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평화 구상'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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