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편익도 고려해야…장기적으론 시장지배적 행위로 전환"

(세종=연합뉴스) 송정은 기자 =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을 사후 규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는 점과 소비자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성익 선임연구위원은 22일 발표한 '온라인 플랫폼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제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플랫폼에 관한 사전규제, 자율규제 논의가 많은 가운데 조 연구위원은 어떤 규제 방식을 운용하든 기존의 공정거래법상 사후 규제의 효과성을 높이는 방안도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문제는 전통적 회사에 적용하던 사후 규제가 온라인 플랫폼에는 꼭 맞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갑질 기업을 다루는 대표적인 사후 규제 중 하나는 공정거래법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다. 이는 거래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갑)가 거래상대방(을)에게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강제해 부당하게 거래 상대방의 이익을 착취하는 것을 말한다.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가 성립하려면 을이 정확히 누구인지, 을이 입은 피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특정한 거래 상대가 있는 전통적 기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은 입점 업체가 수만개에 달한다.
플랫폼 기업은 일반 규칙으로 거래 규칙을 제정하고, 개별 이용사업자들에게 특화된 계약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조 연구위원은 "이런 성격을 고려하면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규제 과정에서 을을 특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플랫폼 거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플랫폼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게 하는 힘은 개별적 맞춤형 계약이 아닌 일반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랫폼의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는 다수의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피해자 공통의 사정이 일정 수준 확인되면 피해자 특정 부담을 덜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기존의 규제는 플랫폼의 외견상 갑질로 보이는 행태가 효율성 증진 효과를 부를 수 있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은 중개 기능 특성이 있어 한 이용사업자를 상대로 거래 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더라도 그 조건이 간혹 소비자 후생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배달앱이 소비자와 자신이 일부 부담하던 배달 수수료를 음식점에 전부 부담시킨 대신 절약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쿠폰으로 발행한다면 음식점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지만 소비자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조 연구위원은 "플랫폼의 남용 행위를 통해 제3의 직접 이해당사자가 긍정적 효과를 얻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건 처리 과정에서 효율성 증진 효과도 검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장기적으로 플랫폼 규제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규율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이용사업자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지위는 특정 상대를 대상으로 하는 상대적 지위라기보다는 자신이 창설한 거래 공간에서 발휘하는 절대적 지위에 가깝다는 점에서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는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처럼 갑과 을 양자 문제로 보지 않고 특정 기업이 절대적인 독과점 위치에서 횡포를 부릴 때 규율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선 시장 지배적 지위를 확인할 때 기존의 시장점유율이 아닌 거래 조건 변경 능력을 통해 입증하도록 제도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플랫폼의 경우 시장 획정이 어렵고 점유율이 낮아도 거래 규칙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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