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시절 동업자, 비리 주동자로 지목…장관 2명도 사직
IMF 신규 차관 협상, EU내 러 자산 활용 재정지원 논의 중 악재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측근과 정부 고위급이 연루된 부패 사건이 터지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안팎으로 난처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실(SAPO)은 원자력공사 에네르고아톰을 둘러싼 1억 달러(약 1천400억원) 규모의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이어 이튿날엔 사건 연루자들을 대거 입건·구속했다.
비리 규모보다 더 큰 충격적인 건 범죄에 연루된 인물들의 면면이다.
현 에너지부 장관과, 직전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법무장관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코미디언 시절 오랜 동업자가 이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건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NABU의 수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낸 데 이어 사건에 연루된 두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측근인 주동자 티무르 민디치에 대해선 3년간 자산 동결 등 경제 제재도 부과했다.
그러나 하필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공격 탓에 수시로 정전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드러난 국가 최고위층의 에너지 기업 비리인 만큼 성난 민심을 잠재우긴 어려워 보인다.
키이우의 반부패센터 안타크 소속의 테티아나 셰브추크는 13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대통령이 알고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든, 몰랐든 상관없이 이는 심각한 문제"라며 "우크라이나 국민은 분노하며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매체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는 조롱하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도 등장했다. 정전으로 불이 꺼진 방을 손전등으로 비추는 모습과 함께 "민디치와 젤렌스키에게 감사하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NABU가 이 사건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선 7월까지 국방장관을 맡았던 루스템 우메로우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의 이름이 이미 돌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외교관은 "국방과 관련된 비리라면 군인과 그 가족에겐 더 충격적이며 국제 파트너들 보기에도 더 난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적으로도 이번 부패 스캔들은 우크라이나에 중요한 시점에 터졌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연말을 시한으로 잡고 4년 만기의 신규 차관을 협상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후 IMF로부터 2027년 만료 확대금융(EFF) 155억5천만 달러를 받았다.
IMF 줄리 코잭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최근 에너지 분야에서 드러난 부패 증거는 우크라이나의 부패 척결 노력을 가속하고 부패 방지 기관이 업무를 수행할 역량, 신뢰도,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의 부패 사건을 지켜보는 유럽 동맹국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EU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재정 지원안을 논의하고 있다.
14일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한 유럽연합(EU) 관계자는 "수사를 통해 드러난 만연한 부패는 역겹다"며 "국제 파트너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평판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EU) 집행위원회가 키이우의 에너지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자금 지출 방식에 더 많은 주의와 투명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13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에서 "부패 척결과 법치주의 분야 개혁작업을 적극 추진하길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친러시아 성향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젤렌스키 대통령과 무수한 연결고리를 가진 전쟁 마피아 네트워크가 드러났다. 이런 혼란 속으로 브뤼셀(EU) 엘리트들은 유럽 시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싶어 한다"며 "이제는 브뤼셀이 그들의 돈이 실제 어디로 흘러가는지 깨달아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내부 비리로 여론이 악화한 우크라이나를 향해 간밤 대규모 무인기(드론)·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13일 밤∼14일 사이 총 430대의 드론과 19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이 가운데 드론 405대와 미사일 14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엑스를 통해 "4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키이우에서만 수십 채의 건물이 피해 봤고 아제르바이잔 대사관도 미사일 파편에 맞았다"고 전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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