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S에 내포된 '新고립주의'·'서반구 우선 기조'와 관련성 주목
日처럼 인태지역내 美동맹인 韓에도 시사점…사드보복때도 美 침묵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조용한 대응'이 눈길을 끈다.
중국군 항공모함 함재기가 지난 6일 일본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 조준'을 한 일 등을 두고 양국 갈등이 깊어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이날 "중국의 행동들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뒤 "미일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단합돼 있다"며 "우리의 동맹국인 일본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흔들림이 없으며, 우리는 이 문제와 다른 문제들에 대해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나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외교·안보 라인 고위 인사들의 대중국 우려 표명이나 비판은 이날까지 나오지 않았기에 전반적으로 미국의 대응은 절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7일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한 이후 중국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수산물 수입 금지 등과 같은 경제 보복과 군사적 긴장 고조 행위에 나선 이후 한달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인 일본이 원하는 만큼의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방영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과 관련해 '참수'를 거론한 중국 외교관의 극언에 대해 질문받자 "중국보다 우리의 동맹국들이 무역에서 우리를 더 이용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본 측이 보도 내용을 부인하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다카이치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하기도 했다.
중일 갈등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이고 있는 '조용한 대응'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지난 5일 공개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투영된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관이 과거 미국 행정부의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사실상의 '적' 내지 '전략경쟁국'으로 규정한 채 말과 행동 양면에서 모두 강하게 견제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무역갈등과 봉합 과정을 거치며 중국에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실리'를 도모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으며, 그런 기조는 이번 NSS에 여실히 투영됐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NSS는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형성할 수 있는 경제, 외교, 군사, 기술적인 능력과 함께 그럴 의도도 가진 유일한 경쟁자"라고 평가한 뒤 "효율적인 경쟁을 통해 중국을 경쟁에서 능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중국을 "미국의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NSS는 안보 면에서 '중국'을 직접 거명해가며 견제하는 표현들을 자제하는 한편, "앞으로 우리는 상호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미국의 경제적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재조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성장 궤도를 유지하고 중국과 진정한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며 이를 지속할 수 있다면 우리는 2025년 현재 30조 달러 규모 경제에서 2030년대 40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NSS가 미국의 국경안보와 직결되는 서반구(아메리카대륙)를 최우선 순위로 거론한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침해받지 않는 가운데, 유럽에서의 갈등에 관여하지 않는 19세기 '먼로주의'의 트럼프 버전인 '돈로주의'가 NSS를 관통하는 핵심 기조라는 평가가 많다.
결국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과 온두라스 대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성 발언 등에서 보이듯 미국이 서반구에 집중하는 동안 아시아에서 중국이 간절히 원하는 '지역패권'을 일정부분 인정해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G2(미중) 영역 나누기' 인식이 이번 NSS에 내포돼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 보인다.
중일 갈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조용한 대응도 결국 NSS를 관통하는 '미중간 영역 구분 및 상대 세력권 인정' 기조와 무관치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NSS가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 및 남중국해 장악 저지 등 제1 도련선(島?線·열도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해협) 방어에 대한 강력한 '선택과 집중'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견제' 의지를 방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다만 중국이 대만 침공이나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물리적 공격 등 '레드라인'을 넘는 '현상변경'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역내 '세 과시'를 일정부분 묵인하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안보 기조일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의 자위대 전투기 레이더 조준, 중러 군용기의 동·남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 등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역내 군사적 행위에 대해 어디까지 좌시하는 지를 탐색하려는 목적이 내포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해 보인다.
일본과 더불어, 인도·태평양 지역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으로서도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중일갈등 관련 대응을 주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NSS를 통해 '제1도련선 방어를 위한 동맹국의 역할 확대'를 촉구한 상황에서 그에 부응한 동맹국이 중국의 '압박' 내지 '강압'에 처할 때 미국이 지지 및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한미가 합의한 '동맹 현대화'를 위한 한국의 행보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될 수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때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각종 보복을 할 때 미국이 별달리 개입하지 않았던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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