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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베네수 공격] 36년전 파나마 데자뷔…중동·중남미서 반복된 정권전복(종합)

입력 2026-01-03 23:56  

[美 베네수 공격] 36년전 파나마 데자뷔…중동·중남미서 반복된 정권전복(종합)
파나마 노리에가, 당시 1월3일 투항…美, 같은 날 베네수 마두로 공격·체포
칠레·과테말라·니카라과, 이란·이라크·리비아에서도…국제법 위반 논란 뒤따라


(서울·워싱턴=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홍정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3일(현지시간) 새벽 베네수엘라에 대한 전격적인 군사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 국외로 이송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외국 정권을 무력 개입이나 정보기관을 동원한 비밀공작 등을 통해 전복시키고 친미 정권을 수립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미국의 '실력 행사' 대상은 중남미와 중동에 집중됐다. 미국의 이익·안보와 직결되는 중남미 국가들, 자원이 풍부하고 맹방인 이스라엘이 위치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들이 대상이었다.
특히 베네수엘라를 기습한 이날은 36년 전 미국의 침공으로 축출됐던 당시 실권자 노리에가가 미국에 투항했던 때와 같은 날이어서 공교롭다.

◇ 美, 중남미 '안방' 드나들듯 침공·전복
미국은 1989년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해 2만4천명의 병력으로 침공했다.
노리에가는 1983년부터 파나마를 실질적으로 통치한 군인으로, 처음엔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협력해 미국으로부터 돈과 정치적 후원을 제공받으며 호가호위했다. 그러나 곧 마약 카르텔과 결탁해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마약 혐의가 드러나자 반미노선으로 갈아타며 미국의 눈 밖에 났다.
결국 미국은 1989년 12월 20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파나마를 침공했고, 노리에가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1990년 1월 3일 투항했다. 미국으로 압송된 노리에가는 미국 법정에서 40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에 체포됐다고 발표된 이날은 공교롭게도 36년 전 노리에가가 미국에 투항한 날(1월 3일)과 같다.
앞서 과테말라에서 미국은 1954년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대통령의 개혁 정부를 붕괴시켰다.
1950년 민주 선거를 통해 당선된 아르벤스 대통령이 토지개혁 과정에서 미국 자본에 타격을 주자 미 중앙정보국(CIA)은 반군 양성과 지원, 심리전 등 각종 공작을 벌여 그를 실각시켰다. 이후 과테말라에선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미국은 1973년엔 칠레에서 민주 선거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했다.
아옌데는 집권 후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미국과 충돌했고, 칠레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던 미국은 정권 붕괴 작전을 실행했다. 당시 CIA는 다양한 비밀공작을 벌였고, 아옌데가 제거된 뒤 칠레에는 이후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 군부의 철권통치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197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니카라과에 들어선 산디니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CIA의 콘트라 반군 지원 작전은 1986년 언론에 폭로되며 이른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비화했다.
이란-콘트라 사건이란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무기를 비밀리에 팔고 그 대가로 니카라과 반군 콘트라에 자금을 지원한 스캔들이다. 이 일로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 위기까지 내몰렸지만, 니카라과에서는 1990년 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미국이 정권 전복에 실패한 역사도 있다.
대표적인 게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다. 1961년 미국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피그스만 침공 공작을 벌이다 실패하면서 오히려 카스트로 정권의 정통성을 견고히 하는 역효과를 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소련과 더 밀착하게 된 카스트로 정권과 미국은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 美, 중동서도 수시로 '완력' 과시
중동의 철권 통치자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고는 했다.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가 그 사례다.
미 CIA는 1953년 영국 정보기관 MI6와 함께 1953년 '아약스' 작전을 통해 이란에 개입,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뜨렸다. 모사데크가 1951년 영국계 석유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자 영국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란이 소련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결국 영국과 합동 공작을 벌여 모사데크를 실각시켰다. 이후 이란에서는 팔레비 왕정이 복권돼 친미 노선을 걸었으나 왕정은 1979년 혁명으로 붕괴하고 이란에선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미국은 2020년 1월에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솔레이마니 암살 작전 역시 당시 1기 집권기이던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앞서 미국은 2003년엔 대량살상무기(WMD)를 숨기고 있다는 이유로 영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했다.
침공 사유로 제시한 WMD는 그러나 이라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후세인 독재 정부가 무너져 권력 공백이 생기자 이슬람 종파 간 분쟁이 극심해졌다. 이는 이 일대에서 결국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발흥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이에 앞서 2001년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끝내 2011년 파키스탄에 은신 중이던 빈 라덴을 찾아내 사살에 성공했지만,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나다시피 철군하고 말았다.
미국은 또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내전이 촉발한 리비아에 다른 서방국들과 함께 개입해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개입하거나 정권 붕괴를 위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일에는 거의 예외 없이 국제법 위반 논란이 따랐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이 국제관계에서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해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가고, 유엔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위권 발동 차원이나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으면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이 유엔의 기본 방침이다.
대표적으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사회 구성원 다수와 국제법 전문가들이 불법적 무력 사용으로 보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명시적 승인이 없었고, 이후 이라크에서 미국이 침공 이유로 내세웠던 WMD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zhe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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