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 패권 경쟁의 경연장 CES…중, 로봇·자율주행 '포효'
엔비디아, '피지컬 AI' 생태계 승부수…국적 불문 합종연횡 활발
한국 돌파구는…자동차·조선 등 특화분야 '피지컬 AI' 고도화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올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한복과 한옥이 TV 화면 속에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오랜 기간 지켜왔던 전시관 중심부에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기업 TCL이 대신 자리 잡았다. 그런데 TCL이 선보인 163인치 마이크로 LED TV 화면에서는 한복과 한옥이 주를 이루는 잔잔한 영상이 반복해 흘러나왔다.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수확물을 손질하는 모습, 절에서 스님이 종을 치는 모습, 공중 촬영으로 담아낸 한옥의 아름다운 전경까지 담아낸 영상이다. 애초 영상·음향 포맷 기술회사 돌비가 유튜브에 '(전남) 구례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원본 영상을 일부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이 기술력을 자랑하는 자리에 왜 한국 전통문화를 담은 영상을 내세웠을까. 단순히 화질을 돋보이게 하려고 영상미를 우선시해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반중 정서를 의식해 중국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전략인지 해석이 엇갈린다.
TCL의 진의가 무엇이든, 중국이 만주와 한반도 북부 등을 자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역사 왜곡인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각에선 한복과 한옥 문화마저 예속시키려 시도해왔다는 점까지 감안해본다면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가뜩이나 AI가 더욱 강조된 이번 CES에서 중국의 위세가 더욱 부각되면서, 전시장 한복판을 차지한 TCL의 행보는 더욱 눈길을 끌었다.

◇ 올해 CES에서도 '포효'한 중국
불과 10년 전만 해도 IT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다.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는 한국 브랜드가 확고한 우위를 점했고, 중국 기업들은 낮은 제조 단가를 내세운 주변기기 중심의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판도가 달라졌다.
올해 CES에 참가한 4500여 개 기업 가운데 중국 기업은 1200개 이상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한국에선 80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중국 현지에선 비자 발급이 대거 거부돼 상당수 중국 기업인들이 참석하기까지 애로를 겪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최근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격화되지 않았다면, 중국의 참가 규모는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로봇을 필두로 스마트 가전,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제조·물류 자동화 등 IT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위용을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중국 기업들이 자국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희석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이냐'는 질문에 본사는 '중국에 있지만 미국에 R&D 센터나 사업장을 운영 중'이라는 답변이 종종 돌아왔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서도 미국 시장에서 신뢰도와 사업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AI 패권 양보 못해'…생태계 제휴에 진심인 미국 기업들
반면, 대규모 언어모델(LLM) 분야에서 글로벌 AI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은 정작 CES 현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중동' 분위기다. CES가 본래 소비자 전자기기 중심의 하드웨어 전시라는 특성 탓이 크다.
다만, 엔비디아는 예외였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종횡무진으로 CES 무대를 누볐다. 그는 자체 발표 행사를 두 차례나 열었고, 지멘스와 레노버 행사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주요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각종 하드웨어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존재감을 은연중 드러내며 AI '생태계 지도'에 미국이 여전히 최강자임을 확인케 했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 구도만을 보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CES에서는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는 가운데서도 기술 동맹과 전략적 제휴가 국경을 넘나들며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도 뚜렷했다.
한국 역시 미국 빅테크와의 제휴 전선에 뛰어든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처럼 독자적인 범용 생태계 경쟁을 벌이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한국만이 가진 특화 산업의 강점을 AI 분야에서 살려보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결국 CES는 AI 변혁기에 기업 간 비즈니스(B2B)가 강해지는 흐름이다. CES를 찾은 정지훈 A2G캐피털 파트너는 9일(이하 현지시간) "CES가 소비자를 위한 가전 전시회에서 이제는 기업 비즈니스를 위한 전시회가 된 거 같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전체 전시관의 중심부를 버리고, 기업 간 비즈니스가 용이한 인근 호텔에 전시관을 차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 AI 시대 최대 전장 '피지컬 AI'…합종연횡 구도는
올해 CES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단연 '피지컬 AI(Physical AI)'다. 이는 로봇·자율주행 차량·산업 자동화 시스템 등 실물 기반 AI를 의미한다. '피지컬 AI'는 젠슨 황 CEO는 지난해 CES 기조연설에서도 피지컬 AI를 강조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관련 칩과 플랫폼은 물론, 협력사들과의 디지털 트윈(가상 모형) 협업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CES 행사장 전체적으로 피지컬 AI 생태계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지멘스 전시관은 마치 양사가 공동으로 꾸린 부스처럼 곳곳에 엔비디아 로고가 배치돼, 엔비디아가 행사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축임을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구글이 TPU를 고도화해 사실상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였던 AI 반도체 시장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지만, 엔비디아는 아예 현재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플랫폼 주도권을 장악해 생태계를 선점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역시 로봇 분야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나타냈다. 지난해에 이어 유니트리 등 중국 로봇 기업들이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라스베이거스 LVCC 노스홀은 사실상 '중국 로봇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중국은 각 분야에서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전체 생태계 패키지 모델을 들고나왔다. 이미 딥시크 등을 통해 LLM에 경쟁력을 보인 데 이어, 피지컬 AI에서도 자체 플랫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상대가 우위의 기술과 생태계를 갖고 있다면, 일단 협력한 뒤 자체 기술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게 중국 기업들의 전략이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도 중국이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 체계를 갖추고 있는 데다, 내수 시장이 크다는 점에서 협력을 제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젠슨 황 CEO가 CES에서 강조한 자율주행만 보면, 표면적으로는 협력 대상으로 중국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황 CEO는 CES에서 자율주행 차량 플랫폼 '알파마요'(Alpamayo)를 공개하면서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에 탑재되는 것을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 내에 미국에서 출시되고, 2∼3분기에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 등을 공략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협력이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인상과 달리, 엔비디아는 이미 중국과도 조용하게 협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업체 모멘타를 '레벨 4 자율주행' 생태계 파트너로 이름을 올렸다. 모멘타는 중국 자율주행 설루션 생태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다. 더구나 알파마요가 오픈소스인 만큼, 중국 기업들이 접근할 기회가 열려있기도 하다.
이번 CES에서는 피지컬 AI 등 AI의 전반적인 분야에서 목표를 제시한 것을 넘어 구체적인 실행 단계를 보여주는 경향이다. 실리콘베이 기반 IT매체인 더밀크의 손재권 대표는 8일 더밀크 주최의 'K-Innovation Night' 행사에서 "몇 년 뒤 무엇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올해 어떻게 하고 현실로 어떻게 혁신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 피지컬 AI 생태계서 한국 기업 경쟁력이 있을까
한국도 산업용과 가정용 로봇에서 호평받았다. 특히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이목을 끌었다.
현대차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내놓으면서 구글 딥마인드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손잡았다고 공개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제미나이 로보틱스가 아틀라스의 두뇌 역할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고 추론하게 된다. 현대차는 피지컬 AI를 위해 지난해 이미 엔비디아와도 협력하기로 했고, 이번 CES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실제 로봇 양산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2028년까지 연간 3만대의 로봇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자동차 제조공정에 투입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여러 특화된 산업 기술 영역에서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든다면, 미중 양강의 AI 패권 경쟁 속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보는 대목이다.
조선 분야도 한국이 피지컬 AI에서 강점을 가질 분야로 꼽힌다. 황 CEO의 기조연설에서는 로봇이 선박을 용접하는 장면이 나왔다. 황 CEO와 롤란트 부시 지멘스 CEO가 각각 한 기조연설에서 HD 현대가 지멘스의 산업용 소프트웨어와 엔비디아의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조선소 '디지털 트윈'을 구축했다는 점이 소개되기도 했다.
다만, 일부 대기업들이 로봇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에 뛰어드는 것과 달리, 국내 로봇 생태계는 아직 척박한 현실이다. 뉴빌리티 같은 벤처기업이 자율주행 배달·경비 로봇을 내놓으며 기술·상업적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아직 일부 기업에 불과하다.

CES를 찾은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은 더밀크의 'K-Innovation Night' 행사장에서 "전체적인 AI 역량은 미국이나 중국에 많이 떨어져 있지만 특화된 분야에서 축적된 전문지식이 많은 만큼, 승부를 겨뤄볼 수 있는 영역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합종연횡이 필요에 따라 쉽사리 이뤄지는 미국 빅테크들과 달리, 국내에서 기업 간 협력에 인색했던 한국 대기업들도 피지컬 AI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 협업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CES에서 눈에 띄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삼성전자 전시관을 찾아 '콜라보' 제안을 던졌고, LG전자를 찾아서도 차세대 모빌리티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피지컬 AI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불필요한 규제가 발목을 잡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특히 한국이 이번 CES에서도 자율주행 분야 분야의 성과가 미진했다는 점에서 기존 규제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CES에서 만난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는 "몇 년 째 CES를 찾아보면 자율주행과 관련해 한국의 기술은 거의 제자리 수준 같아 보인다"며 "자율주행 등 피지컬 AI와 관련된 규제를 탄력적으로 완화하고 정부가 발표한 액션 플랜을 바탕으로 민관 협력을 강화해 실행력 있는 성과가 나길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더밀크의 'K-Innovation Night' 행사장에서 "한국 제조업들이 AI 기반으로 많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다"면서도 "하지 못한 부분을 이루기 위해선 규제 장벽들을 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다음은 CES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이 미중 AI 패권 경쟁 시대에 한국의 활로와 관련해 분석·제언한 인터뷰 내용을 요약했다.
▲ 주영섭 전 중소기업청장
== CES에서 경쟁하는 AI는 LLM이 아니라 제품 내부에 들어가는 피지컬 AI이며, 주로 자율주행·로봇 등 하드웨어 중심 영역에 해당한다. 전체 AI 경쟁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 뒤처지지만, 산업별 특화 모델인 버티컬 AI에서는 한국이 경쟁력이 있다. 조선·자동차·물류 등 산업 특화 분야에서는 AI 모델보다 해당 분야의 데이터와 특화된 전문 지식이 더 중요한데, 한국은 이 축적된 경험에서 강점을 갖는다. 따라서 한국은 범용 AI가 아닌 산업 특화 피지컬 AI에 집중해야 한다. 중국의 로봇이 시각적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높은 정밀도와 반복성, 사람 손에 가까운 다자유도 기술이 필요한 제조 로봇에서는 아직 격차가 크다. 서비스 로봇은 만능성을 요구해 비용 대비 효율이 낮지만, 제조 로봇은 특정 작업만 잘하면 되므로 한국이 이에 집중하면 승산이 있다.
▲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송통신위원)
== CES에서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으며, 대형 가전사는 물론 벤처기업까지 다양한 로봇을 선보이며 전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중국은 제조·부품·소프트웨어까지 피지컬 AI 전 분야의 생태계를 갖춘 모습이며, 산업별 특화 AI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웨이모와 죽스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양강 체제를 구축했고 중국의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규제와 기술 개발 속도에서 뒤처져 자율주행 등 핵심 분야에서 성과가 부족하다. 한국이 대응하기 위해선 AI·자율주행·피지컬 AI와 관련된 규제를 탄력적으로 완화하고 정부가 발표한 액션 플랜을 바탕으로 민관 협력을 강화해 실행력 있는 성과가 나길 기대해본다.
▲ 정지훈 A2G 캐피털 파트너
==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AI 중심의 글로벌 패러다임은 향후 5년 이내로 주도권이 결정될 것이다. 엔비디아는 현대차와 연계된 발표 등을 통해 자율주행·로봇·플랫폼을 아우르는 생태계 장악 의지를 드러냈고, CES는 소비자 전시가 아닌 B2B 협력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도 글로벌 네트워크 편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로봇·피지컬 AI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한국은 전체 생태계 주도의 위치는 어렵지만 조선·건설·제조 등 산업 기반 B2B AI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대중 기술 규제로 공급망 재편이 진행되며 한국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고,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한국 제조 AI·로봇 기업을 대안 공급자로 주목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 전진수 불드스텝 대표
== 한국은 CES 참가 규모에 비해 실제 비즈니스 영향력은 그보다 낮다.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듯 보여도 기술·경제적으로 깊이 협력하고 있으며, 중국의 로봇·피지컬AI 기업들도 엔비디아 플랫폼 위에서 움직이기도 한다. 한국 기업들은 협력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실질적 비즈니스 결속력이 약한 것이 문제다. 반면 중국은 정체성을 숨기며 미국과 적극 협업하는 경향인데, 한국도 완성품 경쟁력을 위해 중국 부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글로벌 가치사슬 현실을 인정하고, 경쟁보다 협업 중심의 생태계 전략을 구축해야 한국이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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