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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뜨거워진 동토, 제국 충돌의 최전선 되다

입력 2026-01-21 06:51  

[율곡로] 뜨거워진 동토, 제국 충돌의 최전선 되다
북극해 패권에 사활 건 美, 그린란드 편입 '올인'…중·러도 호시탐탐
21세기 최대 격전지 전망 속 힘 잃는 유럽 목소리…이누이트 민심 향배는?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지구상에서 가장 큰 섬. 전체 면적의 약 80%가 빙하로 덮인 동토(凍土).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땅. '에스키모'로 불렸던 이누이트가 사는 섬. 아메리카 대륙에 맞닿았지만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 북극권 다큐멘터리와 지구 온난화 문제를 통해서나 가끔 조명되던 낯선 섬. 이쯤 되면 그린란드(Greenland)가 떠오를 거다. 바로 이곳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빙하가 녹을 만큼 관심이 뜨겁다.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해 영토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하면서다. 사실 이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19세기부터 꾸준히 그린란드를 사들이려 해왔다. 1867년 알래스카를 매입할 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구매를 함께 검토했고, 20세기 초반에도 그린란드 편입을 고민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엔 덴마크 정부에 공식 매입 의사를 전했으나 거절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 매입 의사를 공개했다가 덴마크 정부가 반발하자 물러섰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현재 행보는 1기 때와 달리 매우 적극적이다.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린란드를 갖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사실 미국의 그린란드 편입 계획은 이미 지난달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할 당시부터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린란드까지 포함하는 지구 '서반구'에서 외부 경쟁자의 위협을 '완전 차단'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경쟁자란 중국과 러시아를 뜻한다.

이렇게 서두르는 배경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안보다. 특히 온난화로 북극해 항로가 점점 열리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 주변에서 공세적 확장 전략을 펼치자 미국도 다급해졌다. 빙상 실크로드를 선언한 중국은 그린란드에 인프라 투자를 시도하며 영향력을 키우려 했고 대서양에 진출하려는 러시아도 북극해에서 작전 반경을 넓히고 있다. 특히 그린란드는 러시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 본토로 날아오는 최단 경로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공군기지를 둔 이유도 미사일을 조기 포착하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은 우주 기반 미사일 방어망인 '골든 돔'의 핵심에 그린란드가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그린란드는 안보 요충지일 뿐 아니라 북미, 아시아, 유럽을 최단 항로로 잇는 거점이다. 따라서 이 섬을 갖는 나라가 21세기 해상 안보와 물류 지배권을 쥘 수 있다. 미국은 북극해 주도권을 온전히 확보해 러시아와 중국이 대서양과 서반구로 진출할 해상 통로를 봉쇄할 방침이다. 자원 안보 차원에서도 그린란드는 중요하다.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고, 특히 중국이 무기화한 희토류가 엄청나게 매장돼 있다. 이제 그린란드는 군사 안보, 공급망 안보, 에너지 안보 면에서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충돌하는 최전선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내후년께 북극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투에 대비 중이라는 비장한 각오까지 밝혔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강력히 반발하지만, 미국은 이들을 관세 인상 카드로 압박하며 일수불퇴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실체적 질문이 떠오른다. 먼저 중국 또는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점유하려 할 때 유럽이 미국 도움 없이 방어할 힘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즉답을 피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막 없이는 그린란드는커녕 자국의 생존 자체도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아서다. 사실 나토의 속내를 들춰보면 덴마크를 뺀 나머지 나라들엔 그린란드가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 오랜 '유럽병' 탓에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선도국조차 경제가 망가지고 불법 이민자 문제로 질서와 기강마저 무너진,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독일은 이미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만약 미국의 행보를 제국주의라 비난할 경우 애초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병합한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할 거냐는 질문이다. 덴마크도 그린란드를 18세기에 강점해 식민화했다. 심지어 덴마크는 과거 독일이 유대인에 했던 만행 못지않은 가혹 행위를 했다고 비판받는다. 원주민들은 덴마크 정부가 자신들을 상대로 제노사이드(종족 말살) 정책을 폈다고 본다. 덴마크는 이누이트 가임기 여성 수천 명을 속여 피임기구를 자궁에 삽입했다. 인구를 줄이려는 목적이었는데, 소녀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부모로부터 어린 자녀들을 분리해 본토에서 교육하는 반인륜 행위도 했다. 훗날 대상자들은 양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사냥과 어로 활동을 하던 원주민들을 도시로 강제 이주시켜 각종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게도 했다.



사실 미국이 그린란드를 반강제 매입하려는 행보가 제국주의 성격을 띠는 건 맞다. 미국도 굳이 이를 스스로 부인하려 하진 않는다. 최강 제국이 그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행보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제국은 현재에 안주해 팽창을 멈추는 순간 쇠퇴해 사라지는 속성을 지녔다. 인류사에서 예외는 없었다. 페르시아, 로마, 몽골, 소련 제국 등이 어김없이 그렇게 명멸했다. 끊임없이 확장하지 않으면 거대 영토를 보유한 다인종 공동체는 고인 물처럼 금세 썩는다. 중국과 러시아 제국이 계속 팽창하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건국 이후 쉼 없이 영토를 확장해왔다. 방식은 세 가지였다. 전쟁, 외교 협상, 그리고 구매다. 돈으로 사들인 땅만 봐도 적지 않다.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알래스카 등에 이어 가장 최근엔 20세기 초반 매입한 버진아일랜드가 있다. 이 버진아일랜드를 미국에 판 나라가 덴마크다. 그러니 지금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사려는 미국의 계획은 사실 그리 생경한 장면이 아니다. 그린란드 원주민들도 현실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완전 독립이 이상적이지만 언젠간 또 침략 대상이 될 테니,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도 안다. 결국엔 미국이 틀을 만들고 주도하는 세계에서 사는 나라들과 중국·러시아가 형성하고 이끄는 세계에서 사는 나라들의 현주소를 비교하게 되지 않을까.


lesl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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