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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를 가다] 美영사관 깨운 새벽 시위…시내엔 反트럼프 포스터

입력 2026-01-25 07:52   수정 2026-01-25 15:12

[그린란드를 가다] 美영사관 깨운 새벽 시위…시내엔 反트럼프 포스터
"자연이 빌려준 땅, 억만금 준대도 못내놔"…"우린 단지 '얼음 조각' 아냐"
정류장엔 성범죄자 엡스타인과 함께 찍은 트럼프 사진 담은 포스터 붙어



(누크=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자연에게 빌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잘 가꾸고, 지키는 게 저희의 사명입니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우리에게 이 땅을 빼앗을 순 없어요"
24일(현지시간) 아침, 그린란드 수도 누크 항만 인근에 있는 붉은 목조건물 앞이 깜깜한 사위를 뚫고 부산해졌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가정집 같아 보이는 이 건물에는 미국 영사관이 입주해 있다.
북극의 겨울에 해가 오전 10시 반이 넘어서 뜨는지라 새벽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이었지만, 옌스 켈드센(70) 씨와 아비아크 브란트(44) 씨는 오늘도 어김 없이 그린란드 깃발을 들고 영사관 앞에 꼿꼿이 섰다.
이들은 눈물이 절로 날 만큼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그린란드에 대한 욕심을 하루 속히 버릴 것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그린란드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의지가 최고조에 달한 지난 17일 시내로 가득 몰려나와 대대적인 시위를 펼쳐 그린란드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널리 알렸다. 그 이후에도 누군가는 미국측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브란트 씨는 생업도 뒷전에 두고 매일 아침 이곳에 나오고 있다.
원주민인 이누이트계인 그는 "트럼프가 칭한 것처럼 그린란드는 단순한 '얼음 조각'(a piece of ice)이 아닌, 수백년, 수천년 전부터 대대로 이땅을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살아온 땅임을 알리려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고 미국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40년 나치 독일이 덴마크를 점령하자 대응 조치로 그린란드에 영사관을 개설, 1953년까지 운용하다 문을 닫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첫 매입 발언이 나온 이듬해인 2020년 6월 그린란드에 영사관을 재개관했다.
덴마크 영상회사 제작 담당자를 거쳐 현재는 컨설턴트로 일하며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그는 "우리는 자연에서 빌린 그린란드를 잘 보호해 후손에 물려줄 책임이 있다"며 "미국에서 억만금을 준다해도 이 땅을 팔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돈을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대로 충분히 잘 살고 있다"며 "그린란드는 세금을 물론 많이 내기는 하지만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받을 수 있고, 아프면 공짜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미국보다 월등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를 돈으로 사려 한 것이냐"면서 "그린란드는 돈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데 관심을 둔 사회"라고 덧붙였다.
일요일인 25일에도 쉬지 않고 나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아직 트럼프의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다. 일요일이라고 위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가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끌 때까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켈드센 씨가 그린란드 국기 아래 페로 제도, 덴마크 국기까지 덴마크 왕국을 구성하는 3개 지역의 국기를 매달고 시위를 펼쳤다.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19세에 덴마크 북극사령부 소속 군인으로 처음 그린란드에 왔다는 켈드센 씨는 이후 이누이트 여성과 결혼해 그린란드에 정착, 슬하에 자녀와 손자까지 여러 명 두고 행복한 삶을 꾸려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교사, 판사를 거쳐 지금은 조각가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지역사회에서 유명 인사이기도 한 그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 꼴"이라며 "믿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주축인 미국이 그린란드에 욕심을 내며 우리를 위협할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그린란드가 미국 땅이 되는 걸 환영할지 몰라도 미국은 한번 들어오면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아메리칸 드림'은 실상 '악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영사관 직원들이 매일 아침 건물 밖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에는 "하루는 한 직원이 밖으로 나와 근엄한 얼굴로 노려보고 갔고, 하루는 또 다른 사람이 나와 '추우니 몸을 잘 챙기라'고 했다"며 "미국이 그린란드를 위협하는 추가 조치를 섣불리 할 수 없도록 우리가 목소리를 계속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시간여 동안 각자 서서 시위를 펼치던 옌스 씨와 브란트 씨는 귀가 직전에는 나란히 깃발을 들고 보란 듯 영사관 앞을 여러 번 행진하며 미국 측에 경고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날 누크 시내 중심가 버스 정류장에는 미국의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제프리 엡스타인과 젊은 시절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나토 예스, 페도(pedo·소아성애자) 노'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현지 주민의 반감을 짐작케 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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