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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⑺프랑스군의 '영웅서 적으로' 알제리 국부 벤 벨라

입력 2026-02-14 08:00  

[아프리카인물열전] ⑺프랑스군의 '영웅서 적으로' 알제리 국부 벤 벨라
유혈 독립 투쟁한 초대 대통령…동지의 쿠데타로 축출돼 25년간 가택연금·망명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영웅이었으나 1945년 5월 대독 승전의 날에 프랑스군의 알제리 동포 학살을 보고 치를 떨며 적으로 돌아선 남자.
그와 함께 무장투쟁에 나선 알제리인들의 막대한 피 흘림 끝에 132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 지배에 마침표를 찍고 1962년 알제리 독립 후 이듬해 초대 대통령이 된 아흐메드 벤 벨라(1916∼2012) 이야기다.
그는 1916년 12월 25일 알제리 서북부 오랑주의 한 산촌 농가에서 태어났다.
모국어인 아랍어가 아닌 프랑스어 교육을 받았지만, 인종차별 속에 민족주의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 후 10대 후반 프랑스군에 징집돼 이탈리아 전선에서 함께 싸웠다. 레지스탕스 지도자 샤를 드골(후에 프랑스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은 무공훈장을 비롯해 여러 개의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었다.
그러나 그 '전우' 레지스탕스들이 정작 식민주의 철폐와 민족 독립을 요구하며 세티프 등에서 시위하던 알제리인 최대 4만5천여명을 무참히 학살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 군대에 남아서 장교가 되라는 상사의 조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그는 귀국해 민족해방을 위한 지하투쟁에 헌신한다.
"민족독립을 위한 유일한 협상은 전쟁"이라면서 활동하던 중 체포됐으나 1952년 감옥 창살을 쇠톱으로 자르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 뒤 이집트 카이로로 피신해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의 지원을 받으며 외국에서 독립항전을 지휘한다.
그가 1954년 11월 창설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은 8년간에 걸쳐 프랑스에 대항한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알제리인은 최대 150만명(알제리 측 추산)에 달한다.
알제리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 식민 지배국에 맞서 최초의 대규모 유혈 독립을 이룩했다.
벤 벨라는 범(凡)아프리카주의를 옹호하며 현 아프리카연합(AU)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창설에 기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1962년 그의 후원 아래 모로코 접경지대의 FLN 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정책) 투쟁에 대한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벤 벨라는 튀니지 등을 오가며 독립투쟁을 하던 중 1956년 10월 다른 FLN 지도자들과 탑승한 민간 여객기가 프랑스 정보국에 의해 강제착륙 돼 체포됐다. 국가에 의한 최초의 민항기 납치사건으로 붙잡힌 그는 6년간 투옥됐다.
그러나 알제리인의 거센 저항 속에 드골 정부가 궁지에 몰리면서 1962년 3월 석방됐다. 1963년 9월 제헌국민회의에서 알제리 인민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됐고 나중에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프랑스 자본에 종속돼 있던 알제리의 풍부한 석유와 가스를 관리하기 위해 국영 공사(소나트락)를 설립해 에너지 자원 등 경제 주권의 초석을 놓았다.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해 실시한 무상의료제 덕분에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높은 국가의 하나가 됐다. 또 정부 예산의 약 4분의 1을 교육에 쏟아부어 수천 명의 구두닦이 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국제 무대에서는 비동맹 중립 노선을 선포하고 유엔 가입 후 일주일 만에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패한 관료제를 통해 토지를 배분하는 등 국가를 잘못 운영하는 과정에서 동지들이 떠났다.
권력층 내부 알력 다툼도 커졌다. 독립 투쟁 동지였던 우아리 부메디엔의 세력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려다가 오히려 1965년 부메디엔 당시 국방장관에 의한 군사 쿠데타로 축출당하고 만다.
15년간 가택연금 생활을 하던 중 인터뷰를 하러 온 여성 기자와 결혼해 이슬람에 귀의했다. 부메디엔 사망 후 석방됐으나 다시 10년 넘게 스위스 등 해외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벤 벨라는 1990년 9월 첫 다당제 총선 참가를 위해 귀국해 정치적 재기를 노렸으나 참패했다. 1992년 1월 군평의회는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의 승리를 부정하면서 '검은 10년'이라 불리는 내전 속에 사실상 군부 통치를 이어갔다.
그는 해외에서 반전평화운동과 빈곤퇴치, 인권 옹호 등 알제리 양심을 대변하는 현자로 변신했다.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카이로 집회를 주재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11일 수도 알제의 자택에서 95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알제리는 1990년 한국과 수교했다. 2011년 남수단 분리독립으로 영토가 줄어든 수단을 대신해 아프리카 최대 국토(238만1천741㎢·한반도 약 11배)를 가진 나라가 됐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초대교회 교부들이 과거 알제리 땅에서 활동했으며,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작가 알베르 카뮈가 알제리 출신이다.
축구 스타 지네딘 지단도 역시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지금도 약 200만∼500만 명의 알제리인이 프랑스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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