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제거, 악의 축 지도자 중 세번째…후세인 사형·카다피 도주중 피살
악의 축 원조 삼국 중 北만 건재…'인내' 옵션 지운 美 행보에 시선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이란 신정(神政) 독재를 이끌던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에 폭사한 건 의미와 파장이 남다르다. '신의 대리인'이 한낱 인간의 공격에 허무하게 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심리전 측면에서 이란 친정부 세력과 혁명수비대(IRGC)의 사기가 떨어지겠지만, 민주화와 신정 종식을 외쳐온 국민에겐 반격의 계기다. 유사시를 대비해 후계자를 지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권력을 얼마나 수습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민중 봉기를 유도하며 정권 붕괴 또는 핵 포기 항복 때까지 IRGC 거점과 핵 시설 등을 계속 공격할 계획이다.

하메네이 사망은 새삼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해묵은 용어를 소환한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재임 중 연설에서 사용한 말이다. 당시엔 이라크, 이란에 북한까지 3개국이 언급됐다. 몇 달 뒤엔 미 국무부에서 이에 준하는 국가(Beyond the Axis of Evil)로 리비아, 시리아, 쿠바를 리스트에 추가했다. 미국은 이들 6개국이 장기 독재 속에 대량파괴무기를 추구하고 국제 질서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런 오명을 붙였다. '불량 국가'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이들 악의 축 독재자 중 미국에 의해 제거된 세 번째 인물로 기록됐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2006년 미군 침공으로 축출된 뒤 붙잡혀 사형 이 집행됐다. 다음은 무려 42년간 독재하다 2011년 제거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대통령이다. 당시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미국이 군사 개입하자 정권이 붕괴했고 카다피는 도주 중 시민군에 사살됐다. 다만 이란의 향후 상황은 예측하기 이르다. 신정 국가인 만큼 후계자 승계를 통해 항전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과, 원래 중동에서 가장 발전하고 서구화된 나라였고 짧았던 신정 체제에 거부감이 있으니 정권이 바뀔 거란 예상이 상충한다.

이번 하메네이 제거를 지켜보며 가장 두려움을 느낄 주체로 북한이 거론된다. 미국이 지목했던 악의 축 '원조 삼국' 정권 가운데 남은 건 북한 김씨 정권이 유일하다. 지하 벙커에 숨은 신정 국가 지도자를 첨단무기로 표적 제거하는 가공할 화력과 정보력을 확인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현재 심경은 어떨까. 정보 폐쇄적인 독재국가 지도자의 동선을 적국이 정확히 알고 표적 타격했다는 건 내부 첩자와 조력자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지하 벙커도 소용없고, 못 믿을 측근도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에 공포를 안 느낄 사람은 없다.
게다가 북한에 이란은 핵 개발, 군사, 무역 등에서 긴밀히 공생 중인 맹방이다. 그래서 이란 신정 붕괴는 김정은 정권에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현실화한다면 지도층에서부터 심리적으로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은 이란에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을 팔고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를 공급받았다. 따라서 외화벌이와 에너지 수급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만약 이란에 친미 정권이라도 들어선다면 북한과 공유했던 핵과 미사일 기밀을 미국에 넘길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북한은 현 무기 체계의 약점을 노출하고 향후 기술 개발에도 장애가 생긴다.
다만 북한은 다른 악의 축 국가들과는 달리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게 큰 차이다. 핵탄두와 장거리 투발 수단이 있는 만큼 미국도 섣불리 작전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군사 대국 중국과 러시아가 우방인 데다 국경을 접한 이웃이라는 점도 다른 악의 축 국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다.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이어서 공격 시 자칫 세계 대전으로 확전할 가능성까지 우려해야 한다. 미국이 핵 시설 폭격을 계획했다가 김영삼 정권의 반대로 무산됐던 20세기 말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이 됐다. 미국과 북한은 앞으로도 장기간 고도의 신경전을 이어갈 확률이 낮지 않다.
아무리 적성국이라도 '정상 참수' 작전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미국이 이란 핵 개발만큼은 절대 불용한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는 한편, 무엇보다 '인내'가 더 이상 옵션이 아님을 국제사회에 선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연초 첩보영화라 해도 믿기 힘든 군사 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했고, 그린란드 영유권을 놓고선 유럽 우방들에조차 강압적 태도를 취하며 사실상 목적을 달성하는 등 미국은 이제 '레이건 시대' 카우보이로 돌아갔다. 이런 강경 행보는 트럼프 정부 이후로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한동안 '종이호랑이'로 만만히 보였던 이미지를 방치한다면 중국 같은 도전자들에 패권을 내주고 국가 자체가 사분오열 소멸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는 나라여서다. 우리도 이런 기류를 주시하며 국가 전략을 짜야 한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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