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계기로 데이터·클라우드 '디지털 주권' 요구 확산
미국 제재 리스크 등에 기업·정부 전략 변화 분위기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지난해 말에 2026년을 관통할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지오패트리에이션(Geopatriation)'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꼽았다.
지오패트리에이션은 '지정학적(Geopolitical)'이라는 단어와 '본국 송환(Repatriation)'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바꾸자면 '지정학적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정학적 이유에서 이전하려는 대상은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내보냈던 공장 등 생산시설이 아니다. 공장이 자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리쇼어링'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럼 지오패트리에이션이 이야기하는 이전 대상은 무엇일까. 바로 정보기술(IT)의 핵심인 데이터와 클라우드다.
가트너는 지오패트리에이션에 대해 "글로벌 불확실성과 데이터 규제 강화에 따라 기업이 데이터를 글로벌 클라우드가 아닌 자국 또는 인접 지역의 클라우드(주권형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흐름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낮은 비용과 고도의 정보 처리 능력을 찾아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와 같은 빅테크의 클라우드 서비스에 기업과 국가의 소중한 데이터를 기꺼이 넘기던 수년간의 흐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이나 국가들이 '소중한 정보를 남의 클라우드에 올려도 될까?'라는 자각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역외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미국의 '클라우드 액트'와 같은 규제가 꼽힌다.
미국은 이 법을 통해 미국 빅테크가 해외에 설치한 서버에 저장된 정보까지 미국 사법당국이 테러·사이버 범죄 위험 등 안보상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세계 3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가 모두 미국 기업들인데 이들을 이용하는 기업·국가의 민감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이 패권국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찜찜'하다고 여기는 클라우드 이용 주체들이 통제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를 찾아 정보를 옮기는 것이 지오패트리에이션의 주된 양상 중 하나다.
지오패트리에이션을 촉발하는 이유로 민감 정보 열람에 대한 거부뿐 아니라 지정학적 이유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빠질 수 없다.
이는 최근 일어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에서 이란과 관계된 기업들이 맞닥트린 현실이 됐다.
미국 재무부(OFAC)가 이란과 연계된 기관·개인에 대한 제재에 돌입했는데 이에 따라 미국 클라우드 운영사들은 이란과 관계된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클라우드 서비스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물리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망가트린 사례도 나왔다.
이란의 보복 드론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의 AWS 데이터센터 3곳의 시설이 파괴됐다. 미국 빅테크의 클라우드 인프라가 군사 분쟁에서 직접 타격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차량 호출·배달 플랫폼 카림, 결제 서비스 업체 알란과 허브페이 등의 서비스가 한때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등 중동 지역 클라우드를 쓰던 기업들은 예고 없이 서비스 장애를 경험해야 했다.

가트너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낸 보고서에서 "최근 지정학적 갈등과 제재 확대 등으로 디지털 주권이 기업과 정부의 주요 IT 전략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의 '클라우드 액트'와 같은 역외 법률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가 고객 데이터 공개를 요구받거나 서비스를 중단해야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특정 국가의 클라우드 기반 생산성 도구에 대한 의존도가 운영 연속성의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트너는 "이에 따라 정부, 기업 등이 데이터·클라우드를 자국 환경으로 이전하는 지오패트리에이션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기술력 부족에서 빚어지는 한계를 명확히 짚었다.
지정학적 이유에서 빅테크 클라우드를 쓰고 싶지 않아도 그들처럼 고도화된 대량 정보 처리 기능을 갖추지 못한 국가·기업·지역이라면 이전을 망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중동·아시아 국가와 기업들이 미국계 클라우드 의존에서 벗어나 자국 또는 중립적 환경으로 이전하려는 마음을 더욱 부추기는 사건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는 지오패트리에이션은 또 다른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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