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2013년 12월 12일은 선물 옵션 만기일이었다. 이날 코스피200 12월물 콜옵션과 풋옵션 거래에서 한맥투자증권이 정상 수준보다 크게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매수·매도 주문을 쏟아내는 사고가 터졌다. 가격 변수가 되는 이자율 계산에서 '잔여일/365일' 대신 '잔여일/0'으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대량의 주문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한맥투자증권은 이날 주문 실수로 46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이를 복구하지 못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2018년 4월엔 삼성증권 직원이 우리사주 배당금으로 '1주당 1천원' 대신 '1주당 1천주'로 잘못 입력해 112조원 규모의 유령 주식이 지급되는 대형 사고가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들었다.
지난달 국내 2위의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은 61조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냈다. 고객들에게 행사 당첨금 62만원을 지급하려다 직원이 단위를 '원'이 아닌 '비트코인'으로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비트코인 62만개를 지급하는 초대형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작년 11월에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445억원어치의 코인이 해킹당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증권과 가상자산에 이어 이번엔 은행이다. 간편 금융으로 가입자가 늘고 있는 인터넷 은행 토스뱅크는 지난 10일 오후 엔화 환전 거래에서 시세의 절반 수준으로 환율을 적용해 100억원대 손실을 냈다. 정상 환율은 100엔당 934원 수준이었는데 그 절반 수준인 472원대에 엔화를 잘못 매각한 것이다. 토스뱅크는 오류거래를 취소하고 매각된 엔화를 회수한다고 밝혔지만, 어이없는 실수로 금융회사로서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증권에 이어 가상자산과 은행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금융권에 디지털 금융의 전산 사고가 늘고 있다. 과거 금융산업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주로 직원들의 횡령이나 주가조작 등의 아날로그식 범죄였지만, 디지털 금융이 확산된 최근엔 이른바 '팻핑거'(fat finger·사람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로 인한 사고가 주류를 이룬다. 이런 전산사고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업권의 구분도 없이 재발하면서 금융회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금융업은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소비자의 신뢰가 생명이다. 고객 자산을 받아 보관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이런 어이없는 실수로 손실을 초래한다면 금융회사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현재의 금융산업은 디지털 산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증권과 보험, 은행, 가상자산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문과 거래, 정산이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금융회사의 투자는 전산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전산 인력도 대규모로 채용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현금없는 사회, 동전없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 디지털 금융의 안전과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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