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고려는 1274년과 1281년 2차례에 걸쳐 원나라의 일본 원정에 수군을 동원했다. 원정은 태풍으로 피해만 보고 실패했다. 조선은 1619년 후금(청나라 전신)을 정벌하려는 명나라를 돕고자 2만 명에 가까운 군사를 보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대패했다. 이어 1654년과 1658년에는 각각 청나라 변경을 침입한 러시아 코사크세력을 격퇴하기 위해 조총수를 파견한 바 있다.
▶ 전근대의 원군 파견과 달리 현대의 파병 결정에는 국익과 정치가 동시에 작동한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 해외 전투병 파병의 출발점은 베트남전이었다. 1964년 시작된 베트남 파병에는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됐고, 장병 5천 명 이상이 전사했다. '반공(反共) 전선'이란 명분 뒤엔 숨겨진 진실이 있다. 달러였다. 전쟁 특수는 달러를 공급했고, 그 자금이 고속도로와 제철소, 건설 산업에 투입됐다. 산업화 초기 자본 축적의 한 축을 담당한 셈이다. 이후 파병의 의미는 조금씩 바뀌었다. 1990년대 이후 유엔 평화유지활동은 공병·의무·감시 등 비전투 임무가 중심이었다. 국제사회 책임과 외교적 연대 성격이 강했다. 2000년대 아프간·이라크 파병은 재건·경비 임무 중심의 파견이었다. 한미 동맹·국제적 책임·중동지역 이해관계 등 안보·외교·경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일본·중국·영국·프랑스 등 5개국을 거명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요구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나라들이 항로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주도하는 동안 원유 수입국들이 상선(화물선·유조선) 호위를 맡으라는 주문이다. 이란이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는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동맹과 이해관계를 동시에 겨냥한 일종의 청구서다.
▶ 국내에선 익숙한 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라크 전쟁 때도 비슷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3년 한미 동맹을 이유로 자이툰부대 파병을 결정했지만 지지층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강했다.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기여했으나 파병 결정에는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파병 문제는 국제 관계와 국내 정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아덴만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청해부대는 2020년 1월 미군의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제거 이후 작전구역을 확장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상선을 호위한 전례가 있다. 다국적군 참여라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 변수는 돌고 돌아 트럼프다. 그는 동맹국에도 냉혹하게 거래한다. 요청을 거부하면 통상이나 방위비 협상 등에서 다른 방식의 압박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군함을 보내면 이란과의 관계는 물론, 중동 외교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파병의 역사는 국익과 함께 기록돼 왔다. 그 기억에는 계산이 담겨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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