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고령화로 시장 커지는데…허점투성이 유언대용신탁

입력 2026-03-27 06:00  

[이코노워치] 고령화로 시장 커지는데…허점투성이 유언대용신탁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올해 87세가 되는 김모 씨는 보유자산 중 오피스텔 1채를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했다. 생전 임대수익을 받다가 사후엔 상속 분쟁이나 복잡한 절차 없이 자신이 지정한 자녀 중 1명에게 상속할 수 있다는 은행의 설명을 듣고서다. 하지만 임차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유언대용신탁은 임차인의 보증금에 대해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해 임차인들이 계약을 꺼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장기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공실로 인한 손실을 감내하다가 결국 유언대용신탁을 해지하고 말았다.

서울 시내 노후 아파트에 거주 중인 박모(82) 씨는 요즘 고민이 깊다. 자녀들의 유산 분쟁을 방지하려고 아파트를 유언대용신탁에 들어뒀는데 거주 아파트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물건을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하면 조합원 지위 양도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관련 법규에 명확한 규정이 없고 법원의 판결도 제각각이어서 조합이 보수적으로 판단하면 조합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현금 청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박 씨는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청구 소송에서도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를 듣자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신탁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이를 해지하기로 했다.



국내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 진입과 함께 노년층의 자산관리와 활용을 위한 각종 상품이 늘고 있지만 아직 법적·제도적 허점이 많아 가입자들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들은 유언대용신탁부터 요양병원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에 초점을 맞춘 상품과 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으나, 관련 법규의 미비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칫 가입자들의 손실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이란 생전 자산을 수탁자(금융회사)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하고 사후엔 미리 정해둔 수익자(자녀)에게 소유권을 넘겨주는 상품이다. 자녀들의 유산 상속 분쟁을 줄이고 공증 등 복잡한 상속 절차도 피할 수 있으며 가입자의 건강 악화 시에도 수탁자가 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장점이 있다. 노년층의 치매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가운데 17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치매 머니'의 안전한 관리와 운용에 적합한 상품이다.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의 자산 관리 시장이 커지고 있다. 생전 자산의 관리부터 요건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속,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속 분쟁까지 전문가들이 도맡아 관리하고 조언해주는 서비스와 상품이 필요해진 시대라는 뜻이다. 민간 금융사들은 이런 시장과 수요 확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다만 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런 문제점들이 신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가입자들의 손실만 불러오거나 개발된 새 상품과 서비스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공산도 크다. 노년층의 자산이나 사망자의 유산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이뤄져 있는 특성을 고려하면 신탁자산을 둘러싼 부동산 관련 법규와 제도의 정비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치매 머니를 노린 범죄나 유산 분쟁이 커져 사회 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말이다.


hoon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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