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미국의 덜레스 국제공항은 수도 워싱턴 DC에서 서쪽으로 약 40㎞ 거리에 있다. 1958년 개항해 70년 가까이 운영된 이 공항은 외국에서 워싱턴으로 진입하는 주요 관문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직항으로 잇는 대한항공 여객기도 하루 한차례 뜨고 내린다. 저마다의 이유로 워싱턴을 찾는 한국인들이 주로 덜레스 공항을 이용한다.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방미(訪美) 사절단도 있다.
이 공항에서 한국 언론사의 특파원들이 사절단을 맞는 일은 일상처럼 됐다. 한국 행정부를 대표한 주요 부처 장관부터 월드컵 조 추첨을 위한 축구 대표단까지 성격도, 목적도 다양하다. 입법부를 대표한 국회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 사절단의 단골 방문지다. 여타 국가와 비교가 안 된다. 미국이 가진 국제적 위상과 한국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국 대통령의 존재까지 더해졌다. 미 연방정부 산하 워싱턴 공항공단 홈페이지를 보면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약 2천만명이던 덜레스 공항 연간 이용자는 지난해 약 2천900만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공항 터미널 증설이 추진되고 있다.
덜레스 공항을 통해 많은 사절단이 워싱턴을 자주 찾다 보니, 가뜩이나 뉴스 주목도가 높은 워싱턴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벌어지기도 한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2013년 당시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도중 발생했던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아니었을까. 피해자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외교 스캔들로 비화했다. 그는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수행하던 도중, 이 공항을 통해 급거 귀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혐의를 부인했지만, 대변인직에선 해임됐다. 3년 뒤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자신은 "만신창이가 됐고 아직도 마녀사냥의 사냥감 신세"라고 탄식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한국 제1야당인 국민의힘 대표가 덜레스 공항을 통해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에 도착했다. 당초 2박4일(14일 한국 출국, 17일 귀국) 일정으로 잡았다가 5박 7일(11일 출국, 17일 귀국)로 사흘 늘렸다. "방미 일정이 공개되고 난 이후 미국 각계에서 면담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라는 게 수석대변인의 설명이었다. 출국 예정일인 16일 덜레스 공항에서 수속까지 밟던 도중 귀국일을 20일로 사흘 늦추고 워싱턴에 다시 짐을 풀었다. 이번에는 "(미국) 국무부 쪽 연락을 받고 일정을 늘리게 된 것"이라고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야당 방미 사절단은 미국 대통령이나 부통령 또는 국무장관과의 만남을 타진했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불발됐다. 대신 미 연방의회 의원들, 국무부 및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들, 그리고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 인사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인다. 한 당국자가 "적어도 이란전쟁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 결이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소개됐다. '보안상 익명'을 요구했다는데,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고위 직급은 아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당 안팎에선 "뭐 하러 갔느냐"는 비판이 더 거세졌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의회 의사당 앞에서 찍은 '인생샷'만 입방아에 오르고 말았다.
정치권에서 이들을 향해 "해외 화보 촬영"이라며 쏟아낸 비판은 사실 '누워서 침 뱉기'일 수 있다. 가시적 결과물이 없기는 매한가지 아닌가. 과거 정치인들의 출장에서 '업무상'과 '외유성'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유력 정치인의 방미는 '대권 행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낳기 십상이었다. 지리멸렬한 당 지지율 속에 출장 기념사진을 지인의 SNS에 올린 최고위원의 행동은 경솔했다. 다만, 감정선을 건드린 그 한 컷만 꼬투리 잡는 건 지나친 측면이 있다. 상호 이해와 신뢰를 쌓는 외교는 버튼을 누르면 물건이 튀어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야당 사절단이 정치적 목적으로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만 골라 만난 건 아닌지, 그들이 과연 한미 관계의 벽돌 한 장을 올리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냉정히 따져볼 일이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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