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평화롭던 백악관기자협회 만찬장이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경호원들에 이끌려 피신한 트럼프 모습, 2년전 사건과 오버랩돼 '충격'
대피 과정서 다친 참석자에 주인 잃은 구두도…현장서 라이브 방송 목격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행사장 중앙을 가로지르며 비밀경호국 요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몸을 숙인 채 빠르게 이동할 때만 해도 '깜짝쇼'로 마련된 공연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무대 위 주빈석에 자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몸을 숙이라'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2천명 넘는 참석자들과 함께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길 때에야 비로소 '현실이구나' 싶었다.
기자는 25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워싱턴DC '힐튼 워싱턴' 호텔 인터내셔널볼룸에서 열린 백악관출입기자협회 연례 갈라 만찬에 참석해 '돌발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겪었다.
이 만찬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기념하는 행사로 백악관 출입기자협회가 주관하고, 현직 미국 대통령과 정관계 요인들이 참석하는 미국 언론계의 최대 행사다.
집권 1기 4년 내내, 그리고 집권 2기 첫해인 작년에도 이 행사를 잇달아 보이콧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 처음으로, 그것도 이란과 전쟁 중인 상황에서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만찬 행사에 대한 미국 언론의 관심은 지대했다.
주빈인 대통령의 '선 넘는' 조크가 특징인 이 행사에서 평소에도 거침없는 언사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파격을 보일지, 개전 약 2개월이 경과한 대이란 전쟁과 관련해 어떤 언급을 할지 등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행사장은 시작부터 활기가 넘쳤다. 치열한 취재 경쟁의 현장을 떠나 턱시도 정장과 화려한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언론인들과 각계 인사들은 저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폭탄성 발언'을 할지를 예상하며 대화를 나눴고,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더그 버검 내무장관 등 각료들은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주빈석으로 등장하자 참석자들은 환호했고, 미국 국가 연주와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회장의 스피치 등 순서가 진행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다 갑자기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몸을 낮추라"(Stay down)고 소리치고, 중무장한 요원들이 주빈석에 들이닥친 순간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처음엔 '깜짝 공연' 아닌가 생각했던 기자도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숨긴 뒤 경호요원들이 테이블 주변을 뛰어다니고, 와인잔들이 부딪히거나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실제상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용의자가 산탄총을 쏘며 행사장으로 진입하려 시도한 일은 행사장과는 다른 층에서 벌어졌지만, 경호 요원들은 공범이 있을 가능성 등을 감안해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을 급히 대피시킨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주빈석에서 경호요원들에 이끌려 무대 뒤로 이동하던 순간 2024년 7월 대선 유세 도중 그가 총격을 받았던 장면, 당시엔 TV 화면을 통해 봤던 그 장면이 생각나면서 일순 머리가 아득해졌다. 공격을 받은 상황인지, 단순히 대피하는 상황인지 그 순간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언론인들의 행사였기에 참석자들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현장 상황을 촬영하느라 바빴다. 전화 연결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10여분이 경과하고 상황이 정리된 후에는 몸을 피하는 도중에 부상한 참석자가 부축을 받으며 실려 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행사장 바닥에 놓인 주인 잃은 구두가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행사가 재개되고, 곧 만찬의 주식이 제공될 것이라는 주최 측의 공지가 있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지만, 결국 행사를 종료한다는 재공지가 나왔다. 기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제히 호텔을 떠났다.

호텔 주변에는 경찰차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폴리스라인이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다.
쌀쌀했던 이날 밤의 추위와 허기를 동시에 느끼며 집으로 향한 행사 참석자들은 "크레이지"(crazy·미친 일), "언빌리버블"(unbelievableㆍ믿기지 않는다)을 되뇌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어렵게 잡은 차량공유 서비스 기사에게 이 사건을 알려주자, 기사는 깜짝 놀라면서 트럼프 시대에는 참으로 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마디했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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