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가다] ②문닫은 '헤밍웨이 호텔'…"앞을 보지 말고 위를 보며 걸어라"

입력 2026-05-17 07:00  

[쿠바를 가다] ②문닫은 '헤밍웨이 호텔'…"앞을 보지 말고 위를 보며 걸어라"
헤밍웨이의 암보스문도스도, 지미 카터 묵었던 호텔도 문 걸어잠갔다
'클래식카' 업체 사장 "12년간 이런 불황은 없어"…'경제적 폭격' 실감
관광지 곳곳서 쓰레기 더미 포착…건물 보수 못해 잔해 떨어질 위험도


(아바나=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쿠바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헤밍웨이는 약 7년간 아바나의 한 호텔을 삶의 주 무대로 삼았다. 그곳에 살며 여러 나라를 다니긴 했지만, 언제나 호텔로 돌아왔다. 주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쓸 때도 그는 구시가지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에서 작업했다.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는다"는 그 유명한 '암보스 문도스' 문을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두드렸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미 영업을 종료한 지 오래된 듯했다.
관광객들의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드문드문 거리의 악사들이 기타를 치며 '손님'(?)을 물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암보스 문도스'에서 몇 분만 걸어가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묵었던 호텔 산타 이사벨도 있는데, 문을 닫은 건 마찬가지였다. 마돈나·제이지 등 유명 팝스타들이 묵었던 호텔 사라토가는 2022년 가스 폭발로 큰 피해를 본 후 수리가 되지 않은 채 을씨년스러운 건물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쿠바 관광의 중심지, '올드 아바나' 지역에도 관광객이 거의 없는데, 호텔업이 잘될 리는 만무해 보였다.

쿠바의 상징인 클래식 올드카도 마찬가지였다. 올드카 상점을 운영하는 사장들은 구색만 갖추고 있는 형편이었다. 잘 나갈 때는 광장에 일렬로 100대가 넘는 알록달록한 차들이 손님을 기다렸지만, 이날은 겨우 2대만 눈에 띄었다.
클래식 올드카 소유주인 에르네스토 소사 씨는 "올드카를 지난 12년간 운영하면서 관광업에 종사했는데, 이렇게 파리가 날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칠이 한참이나 벗겨진 헐벗은 건물들이 있었다. 빨래들이 소금기 담긴 바람결에 흩날리는 걸 보니 사람들이 사는 게 분명했다. 폭격을 맞은 듯 반쯤 부서진 곳도 있었다.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이나 이란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쿠바가 다음 차례'라며 이란 전 이후 차기 전쟁을 시사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일부 실현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스쳐 갈 정도의 삭막한 풍경이었다. 봉쇄에 따른 '경제적 폭격'의 위력은 전투기나 군함을 이용한 실제 폭격 못지않게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 폭격 맞은 것처럼 낡은 집들 사이를 걸어보니 쿠바인들이 겪어내고 있는 신산한 삶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무너질 듯한 건물들 사이를 채우는 쓰레기 더미, 삼복더위와 결합한 음식이 상해가는 냄새, 여인들의 지분 내음, 대낮부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 청춘들의 서툰 발걸음 같은 것들이 공감각적으로 포개지며 쿠바라는 이미지를 구현해내고 있었다.
낭만적인 해변, 시가와 모히토의 낭만, 살사와 재즈가 넘실대는, '상상 속 쿠바'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무렵, '클래식카' 소유주 소사 씨의 무거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쿠바에선 위를 보면서 걸어야 해요. 주변이 예쁘다고 한눈을 팔아 선 안 됩니다. 위에서 건물 잔해가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그런 일이 가끔 벌어져 사람이 여럿 죽었어요. 흔히 있는 사고예요. 그리니 쿠바에서 건물들 사이를 걸을 때 아래를 보지도, 앞을 보지도 말고, 위를 보고 걸으세요. 혹시나 불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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