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 조경공사·홍보물 설치…국제행사 준비 한창
화웨이·텐센트·BYD 본거지…中 기술굴기 상징도시 부상

(선전=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큰 행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있죠."
29일 오후 중국 광둥성 선전시 푸톈구.
삽질 소리와 굴착기 엔진음이 끊이지 않는 공사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이 나무와 꽃을 심느라 분주했다.
삽으로 흙을 다지던 한 작업자는 무슨 공사를 하는지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정확히 어떤 행사인지는 잘 모르지만 중요한 행사라고 들었다"며 다시 묵묵히 나무 심기에 집중했다.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선전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으로 변한 모습이었다.
중국 당국은 정상회의 장소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시민 10명 중 9명은 선전국제교류센터를 유력한 회의 장소로 꼽았다.
국제교류센터는 넓게 뻗은 지붕과 현대적인 외관으로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건물 주변은 각종 정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로 옆에는 공사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고, 작업자들은 가로수와 녹지대를 정비하며 단장 작업에 분주했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손님맞이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국제교류센터가 위치한 샹미후(香蜜湖·향미호) 주변은 접근이 사실상 차단돼 있었다.
넓은 호수 주변에 2m 높이의 펜스를 쳤고, 내부에서는 굴착기와 작업 차량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조경 공사를 진행했다.

작업자들은 새 나무를 심고 있었고, 일부 구간에서는 산책로를 새로 조성하는 작업도 이어지고 있었다.
호수 입구에서 만난 왕모 씨는 "주말이면 시민들이 호숫가를 산책하거나 운동을 즐기던 곳"이라며 "얼마 전부터 펜스를 치고 대규모 공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는 없었지만, 주민들은 국제교류센터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불편하지만 우리 동네에서 세계 정상들이 모인다고 생각하니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공사는 향미호 주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도심과 공항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 곳곳에서는 중앙분리대 화단을 정비하고 가로수를 손질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심 곳곳에서는 APEC 개최를 알리는 홍보물도 쉽게 눈에 띄었다.
버스정류장에는 의류·신발 광고와 나란히 APEC 개최를 알리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었고, 시내버스 내부에도 '선전으로 향하는 약속이 아름다운 아시아·태평양을 만든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초고층 빌딩 외벽에도 APEC 개최 도시임을 알리는 홍보하는 문구가 등장해 국제행사를 앞둔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선전 최대 전자상가 밀집 지역인 화창베이에서 만난 직장인 리모 씨는 "과학기술 도시 선전에서 APEC을 개최한다는 소식은 시민들을 설레게 한다"며 "세계 정상들이 선전을 방문해 세계 첨단산업을 이끄는 선전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황모 씨는 "영문 표지판과 안내문이 크게 늘었다"며 "외국인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이미 시작된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이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전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자 중국 첨단기술 산업의 심장부로 꼽히는 도시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 정보기술 기업 텐센트, 드론 제조업체 DJI, 전기차 업체 BYD 등이 모두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개혁·개방의 성공을 보여주는 도시이자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과시하는 도시라는 상징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작은 어촌이었던 이 곳은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실험장이었던 선전은 현재 상주인구가 1천800만명을 넘는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당시 영국령 홍콩으로 헤엄쳐 밀입국하려는 중국인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밀입국을 막기 위해 설치했던 철조망 일부는 현재 선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홍콩인들이 선전으로 건너와 창업하거나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고 홍콩과 인접한 선전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낙후된 어촌 마을에서 현대적인 국제 대도시로 변모했다"며 차기 개최지인 선전을 직접 소개했다.
중국은 2001년 상하이, 2014년 베이징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상하이 APEC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맞물려 개방된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면 베이징 APEC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올해 선전 APEC은 첨단기술 강국으로 도약한 중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중국은 올해 개방 확대와 국제협력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올해 APEC 주제를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건설, 공동 번영 촉진'으로 정하고 개방·혁신·협력을 3대 협력 방향으로 제시했다.
세계 정상들이 찾을 11월까지는 아직 5개월 이상 남아 있다.
하지만 국제교류센터 주변을 메운 공사장과 도심 곳곳의 APEC 홍보물, 그리고 "우리 도시를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말하는 시민들의 표정에서는 이미 선전 APEC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듯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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